스크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느끼게 하는 배우들이 있다. 유해진(45)이 바로 그런 배우다. 지난해 '해적: 바다로 간 산적'에서 그가 보여준 존재감이 이를 증명한다. 대종상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이 그에게 남우조연상을 선사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올해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뜻밖의 사랑도 받고 있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에 절친한 차승원과 함께 출연한 유해진은 '참바다씨'라는 별명과 함께 대중적인 관심을 얻었다.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 광고 출연만 놓고 봐도 그의 높은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아직 2015년이 절반이나 남았지만 지금의 열기만 본다면 올해를 '유해진의 해'라고 칭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유해진의 활약은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극비수사'(감독 곽경택)로 이어진다. 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실제 유괴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유해진은 사건 수사에 참여하게 되는 도사 김중산 역을 맡아 형사 공길용 역의 김윤석과 호흡을 맞췄다. 사주를 통해 아이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감초 같은 웃음을 주로 담당해온 만큼 '극비수사' 속 캐릭터 설명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코믹한 캐릭터가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유해진은 웃음을 최대한 배제했다.
"사주나 신 내림 같은 미신적인 요소보다 아이를 구하려는 진실한 마음이 이 인물의 핵심이라고 봤어요. 공길용 형사가 동적인 만큼 김중산 도사는 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균형이 맞을 것 같았죠. 무엇보다 공길용 형사나 김중산 도사나 다 아이를 둔 아버지거든요. 그래서 더 자식 같은 마음으로 사건에 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길용 형사, 그리고 김중산 도사의 공통점은 유괴된 아이를 구하겠다는 신념으로 사건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을 통해 '소신 있는 삶'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유해진은 "어렸을 때는 소신 있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만의 고집을 지켜온 대쪽 같은 분들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소신을 지키려고 하는 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이렇게 삐걱거리면서도 굴러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소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향한 응원이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이후 받고 있는 많은 사랑에 대해 유해진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며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한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어릴 때 이런 인기를 얻었다면 삶이 확 달라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걸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진다"고 털어놨다. 단역과 조연을 거쳐 주연까지 맡을 수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에게도 분명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남들도 겪는 것처럼 힘든 시기를 견뎌낸 그는 지금 흐트러지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가다듬고 있다.
유해진은 '극비수사'를 시작으로 '소수의견'과 '베테랑'으로 연이어 극장가를 찾는다. 최근 촬영을 마친 '그놈이다'도 올해 중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네 작품 모두 코믹한 면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를 연기했다. 유해진의 다양한 변화가 기대되는 이유다.
그에게 배우로서의 소신을 물었다. 그는 "연기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좋아하는 연기를 '배운 것이 도둑질 뿐'이라는 생각으로 하게 된다면 그때는 배우를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태해지고 힘들 때마다 그 생각이 그대로 있는지,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지 되새겨 보죠. 아직 연기에 대해 제가 어떤 소신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마지못해 연기를 하는 건 아니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사진/라운드테이블(한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