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스트레스'로 자살한 관리 직원, 산재 인정"
[메트로신문 이홍원 기자] 회사 관리직을 맡고 나서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경우에도 산재로 인정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A씨 유족이 산재로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1988년부터 20년간 생산업무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회사는 2009년 5월 A씨에게 작업반의 다른 조원들을 관리하는 관리직을 맡으라고 했다. A씨는 두 차례 거절했지만 회사가 계속 부탁하자 이를 수락했다.
그러나 A씨는 관리직에 대한 부담감에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조원 9명 중 7명이 A씨보다 나이가 많았고, A씨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은 점도 스트레스 이유였다.
신경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된 A씨는 한 달여 만에 다시 생산직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결국 자살을 시도했다.
가족들은 A씨가 저산소 뇌손상으로 치료를 받던 중 산재로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A씨는 소송이 진행되던 2011년 8월 숨졌다.
유족들은 본인 의사에 반해 관리직을 맡게 된데 따른 스트레스로 정신과적 문제가 발생해 자살을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심과 2심에서는 모두 산재로 인정하지 않았다.
A씨가 우울증을 앓은 주요 원인은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 때문으로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에 이르렀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A씨가 관리직을 맡기 전에는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해왔고 정신병적 증상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업무상 스트레스로 급격히 우울증이 유발됐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내성적인 성격의 A씨가 두 차례나 고사한 끝에 관리직을 맡았고, 이후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중압에 시달린 것으로 판단된다"며 "조원들을 통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등 심한 스트레스가 누적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또 대법원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A씨의 성격이 자살시도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A씨가 자살을 시도한 시기가 관리직을 그만둔 뒤라고 해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