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핀 배우자의 이혼 요구' 대법 공개변론 치열
[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바람을 피운 배우자가 이혼을 요구할 경우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지를 두고 대법원이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26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의 대상이 된 사건은 1976년 결혼한 A씨가 아내 B씨를 상대로 청구한 이혼소송이다. A씨는 1998년 다른 여성과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았고, 2000년 집을 나와 이 여성과 동거를 하다 2011년 B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다.
1965년 이후 우리 법원은 혼인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A씨는 1·2심 모두 패소했다.
그러나 부부관계가 회복될 수 없다면 이혼을 허용하는 파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대법원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넘기고 각계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김수진 이혼 전문 변호사는 이날 변론에서 "파탄 난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당사자 모두에게 고통을 줄 뿐"이라며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오히려 서로 증오만 키울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12년 조사 결과를 인용해 "국민의 55.4%, 전문가의 78.7%가 배우자 보호 조건 아래 파탄주의를 제한적으로 수용하는 데 찬성했고, 세계 각국의 이혼법도 파탄주의로 변해왔다"며 파탄주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김 변호사는 이혼이 상대방에게 가혹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때는 이를 제한하는 가혹조항을 도입하고, 위자료나 재산분할 등 부양적 요소를 지금보다 더 고려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화숙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유책주의를 고수하면 법적인 혼인은 유지되겠지만 당사자 간의 원망과 분노의 감정이 자녀들에게도 대물림될 것이라며 이혼을 허용하되 재산분할과 위자료 등을 형평성 있게 고려해 새 출발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이 교수는 유책주의 제도는 여성이 이혼피해자 지위에 머물던 시절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탄생했다며 이제는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만큼 파탄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은 성숙됐다면서도 외국처럼 가혹조항 등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혼 전문인 양소영 변호사는 "부정행위로 혼인을 깨 놓고 관계가 파탄됐으니 해방시켜달라며 권리를 남용하는 것을 법이나 판례로 보호할 수는 없다"며 유책주의의 근간이 되는 이런 정신은 아무리 시대와 가치관이 바뀌어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로도 오기나 보복감정 등으로 악의적으로 이혼에 응하지 않을 때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도 받아들이는 만큼 굳이 더 나아가 파탄주의를 택할 실익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법원이 인정하는 위자료나 재산분할비율, 양육비 수준으로는 잘못이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파탄주의를 도입하기에는 아직 현실이 냉정하다고 지적했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우리 사회의 현실이나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할 때 파탄주의 전환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조 부장은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하려면 이혼을 강요당하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배우자에 대한 지원과 부모의 이혼으로 불안정한 양육 상황에 처하게 되는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책주의가 이혼 과정에서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며 분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도 있지만, 파탄주의를 도입한다고 해도 진흙탕 싸움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대법원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됨에 따라 50년간 유지돼 온 유책주의 판례가 바뀌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대법관들도 현재의 위자료나 재산분할 실태에 비춰볼 때 파탄주의를 받아들일 만한 환경이 되는지, 유책주의를 고수하면 관계가 더 악화되고 오히려 가정을 더 깨는 결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냐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결과에 따라 결혼과 이혼을 둘러싼 국민 생활에 큰 변화가 있을 수도 있는 이번 사건의 결론은 올해 안에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