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라면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자신과는 또 다른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그 인물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과정이 힘겨운 나머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인물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을 때 느끼는 유쾌함과 즐거움을 알기에 배우는 또 다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 '나의 절친 악당들'./이십세기폭스코리아
고준희(29)에게 '나의 절친 악당들'(감독 임상수)의 나미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자신에게는 없는 자유로움이 있는, 멋있으면서도 부러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준희는 이번 영화에서 제대로 신나게 놀았다. 그만큼 나미에게 푹 빠져들었다.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임상수 감독의 영화답게 등장인물도 현실적인 모습과 거리가 멀다. 맨발로 렉카차를 운전하는 나미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형적인 톰보이 캐릭터다. 하지만 고준희는 나미를 전형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나미는 외로운 친구에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처해 있는 환경도 그렇고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자처럼 옷을 입고 이야기를 하죠. 하지만 빤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나미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친구거든요. 자신의 어두움이나 힘든 것을 회피하지도 않지만 굳이 이야기하려고 하지도 않죠. 그게 좀 멋있었어요."
영화 속에서 나미는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지누(류승범)와 처음 관계를 맺게 될 때에도 나미는 무엇이 좋은지를 명확하게 말하고 요구한다.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참신한 여성 캐릭터다. "사람도 처음 어떤 감정을 느끼면 자신도 모르게 그 감정을 자꾸 이야기하잖아요. 나미도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누를 만나 이전에 몰랐던 감정을 느끼게 되니까 계속 이야기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미의 매력은 그 어떤 구속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함이다. 고준희도 나미의 자유로움 때문에 연기하는 것이 즐겁고 신났다. 현실에서는 누릴 수 없는 감정이기에 부러움이 생기기도 했다. 고준희는 "나미는 온전히 자신을 사랑해주는 지누가 있고 '절친 악당들'이라고 할 수 있는 친구들도 있어서 부러웠다"고 말했다.
스크린 속 나미가 자유롭고 솔직한 인물로 다가오는 것은 고준희가 나미를 그 정도로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미에게서 고준희의 실제 모습을 찾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준희는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혼자 살아온 나미와 아직 부모님이 살아계신 나 사이의 닮은 점을 찾는 건 정말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비슷한 점은 있을지언정 닮은 점을 찾기는 힘들다는 말이다. 인간 고준희도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사는 편이지만 나미만큼은 아니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임상수 감독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는 점에서 '나의 절친 악당들'은 고준희의 연기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작품으로 여겨진다. 다음 작품을 향한 좋은 발판이 될 수 있기에 기대가 클 법도 하다. 하지만 고준희는 "'나의 절친 악당들'을 전환점이라고 한다면 다른 작품이 서운해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매 작품마다 즐겁고 열심히 촬영한 것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지금 고준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즐거운 판을 깔아줘 잘 놀았던" 작품을 관객과 함께 보며 신나게 즐기는 것이다.
사진/라운드테이블(이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