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상영된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영화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얼마 전 다시 보았다. 이 영화는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가 1년도 안되는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고 입원한 병원에서 우연히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사업가 에드워드(잭 니콜슨)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남은 여생동안 하고싶은 일을 다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하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 두 사람은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기 위해 병원을 뛰쳐나가 여행길에 오른다.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 다이빙하기,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화장한 재를 깡통에 담아 경관 좋은 곳에 두기… 등등. 버킷리스트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두 사람은 그들이 만나기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사랑은 멀리 있던 게 아니라 자신한테 이미 와 있었음을...마침내 두 사람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면 신이 했다고 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줬는가?"
영화 버킷리스트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것을 하는 주인공들을 보며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한부 설정이 훨씬 와 닿긴 하지만.
영화 버킷리스트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하루를 살더라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죽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영화 속 주인공처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죽는 것이 바로 웰다잉이다. '제대로, 잘, 행복하게 죽는 것' '웰다잉'은 이제 노령화 사회로접어든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기고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된 것이다. 누구나 늙고 죽음을 뛰어넘을 수 없기때문이다. 그런측면에서 호스피스와 존엄사문제는 웰다잉을 위해 꼭 풀어야 할 요소다. 호스피스제도가 우리생활에 들어오면 고독사와 돌연사를 예방할 수 있고 축복 속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어서다.
다행히 어제(15일)부터 말기 암 환자의 호스피스·완화의료(이하 호스피스)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이 시작됐다. 지난 2003년 우리나라 말기 암 호스피스·완화의료가 법제화된 지 12년 만이다. 이로써 말기 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 보다는 호스피스를 선택해 웰다잉을 할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호스피스는 신체적, 정신적, 심리사회적, 영적 등 전인적인 치료와 돌봄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동안 급성기 치료 중심인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적용할 수밖에 없어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웠고 따라서 호스피스 제도의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현재 우리나라 암 환자들이 말기 암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경우는 12.7%('13년 기준)에 그치고 있다. 이용을 해도 임종을 앞두고 호스피스를 선택해 환자와 보호자 모두 충분한 호스피스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해외 말기 암환자 호스피스 이용률은 미국이 43%, 대만 30% 수준이다.
이제 우리도 호스피스에 대한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가정호스피스'도 시행되기 때문에 꾸준한 홍보와 계도를 하면 점차 이용률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웰다잉의 또 하나는 존엄사문제다. 지금까지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던 '존엄사'문제는 단순히 환자와 의사간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즉, 환자와 보호자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존엄사가 필요하다는 찬성론과 생명경시 풍조가 확산될 수 있다는 반대론이 맞선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존엄사문제는 계속해서 거론돼 왔고 이제 곧 법제화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은 '호스피스 이용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법률안이 통과되면 숨을 연장하는 의료 행위를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환자의 일기장이나 유언장이 없어도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자녀가 "우리 아버지는 평소 인공호흡기를 통한 수명 연장을 원치 않았다"며 치료 중단을 요구하면 의료진이 이를 합법적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공통된 지침을 마련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환자와 그 가족들이 오랫동안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모든 병원에 통일된 존엄사 지침이 하루빨리 법제화되길 바란다. 그래야 누구나 인간으로서 진정한 웰다잉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