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 안건을 주주 결의에 부치는 임시 주주총회에서 주총 진행자들이 개표작업을 하고 있다. 이날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을 찬성률 69.53%로 가결했다./연합
[메트로신문 김종훈 기자]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안이 통과됐지만 넘어야할 산은 남았다. 삼성물산은 17일 오전 9시40분께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제일모직과 합병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날 제일모직도 주주총회를 열어 삼성물산과 합병안을 승인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오는 9월 통합 삼성물산으로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안건 통과로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삼성물산과 이재용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제일모직을 합병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일부 성공하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다. 지분율은 7.6%. 그 다음은 삼성생명으로 지분율이 7.2%다. 4.1%를 갖고 있는 삼성물산이 3대주주다. 이건희 회장은 네 번째로 3.4%를 쥐고 있다.
따라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14.7%의 의결권을 확보하게 된다. 금융산업분리 규정에 따라 5%가 넘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을 받더라도 삼성물산 지분 확보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은 강화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남았다. 해외 투자자와의 분쟁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번 합병안 통과로 주총에 앞서 반대의사를 통보한 주주들은 17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지난 5월 26일 합병 계획을 공시하면서 삼성물산이 제시한 보통주 1주 당 주식매수청구가격은 5만7234원이다. 삼성은 주식청구권 매입대금이 1조5000억원(삼성물산 1조원·제일모직 5000억원)을 넘으면 합병계약서에 따라 합병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지난해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건은 주총을 통과한 뒤 주식매수청구 규모가 한도를 넘어 무산됐다. 주식대금을 모두 지급하면 합병을 진행 할 수 있었으나 합병회사의 재무상황 악화 등을 고려해 합병 포기를 결정했다.
삼성물산이 지난달 19일 공시한 '주요사항보고서(합병결정)'에 따르면 주식매수대금 조달 가능 금액은 1조원이다. 주총 전까지 반대 의견을 밝힌 지분 가운데 보통주 기준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주 수가 1747만2132주(전체의 11.18%)를 넘으면 삼성물산이 조달 가능한 금액을 초과한다. 삼성물산이 발행한 보통주는 1억5621만7764주다.
관건은 삼성물산의 주가 흐름이다. 이시간 현재 삼성물산 주가는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만약 주가가 폭락할 경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17일 오후 1시 51분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물산은 전날보다 7.79%내린 6만3900원에 거래되고 있다. 현 시세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인 5만7234원보다는 조금 높게 거래되고 있지만 장중 변동폭이 상하 30%로 높아진 터여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현재도 주가는 떨어지고 있다. 애국주의 마케팅에 불만을 품은 외국인들이 매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상황은 돌변할 수 있다.
주가가 빠지지 않아도 엘리엇 등이 악심을 품으면 여전히 삼성은 코너에 몰릴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엘리엇을 포함해 33.53%다. 7.12%를 보유한 엘리엇이 외국인 지분 5%가량만 끌어 들여도 삼성물산의 주식매수 조달 가능 금액을 넘길 수 있다. 엘리엇은 우선주 합병비율 임의적 산정, 자사주 처분 등을 문제삼아 주총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이번 합병에서 삼성이 잃은 것은 또 있다. 국수주의 마케팅에 호소하는 모습을 본 후 글로벌 투자자들이 집단적으로 삼성에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시작은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였다. 엘리엇은 1조원 이상을 투자해 삼성물산 지분 7.1%와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한 삼성 계열사의 지분을 사들였다. 이후 엘리엇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며 '합병 반대'를 주장했다. 엘리엇은 무조건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하도록 규정한 합병 비율 산정이 삼성물산에게 턱없이 불리하다는 점을 두각시켰다. 자산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보다 3배가 넘는데 주가로만 결정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삼성물산 주가는 작년 연말부터 삼성이 합병을 발표하기 직전인 5월 말까지 30% 가량 빠진 반면 제일모직 주가는 크게 올라, 삼성물산 주주들로서는 불만을 터트릴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외에도 캐나다 연기금, 캘리포니아교사연금, 플로리다공무원퇴직연금 등 유명한 해외 장기투자 펀드까지 합병 반대표를 던졌다는 점도 유념해야한다. 글로벌 1위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2위인 글라스루이스 등도 투명성 결여와 소액주주들에 불리한 조건 등을 이유로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한국의 한국기업지배구조연구원과 소액 주주들도 상당수가 삼성을 비난하며 반대세력에 합류했다.
삼성은 삼성물산 직원들을 총동원해 국내외 주주들을 찾아다니며 "주주중심 경영"을 약속했지만 상당수 해외 투자자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삼성에 대해 기업 실적보다는 오너를 위한 승계 구조 만들기에 더 집착하는 기업이라는 시각도 외신들을 통해 제공했다.
재계 관계자는 "합병안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주식매수청구권이란 복병이 남아 있고, 해외 투자자와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는 기관들이 등을 돌렸다"며 "삼성은 이번 합병 추진 과정에서 해외투자자들을 반삼성으로 돌아서게 했고, 소액투자자들도 주가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른 주식매수대금 조달 가능 금액인 1조원을 초과할 경우 무리하게 합병을 추진하면 향후 이사진들은 회사의 리스크를 알고도 강행배임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