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개봉인 만큼 홀가분한 마음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협녀, 칼의 기억'(감독 박흥식, 이하 '협녀')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전도연(42)은 홀가분함보다 아쉬움을 더 많이 드러냈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처럼 연기만큼은 누구보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전도연의 입에서 '부족함'과 '포기' 같은 단어가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협녀'는 고려 후기 무신정권을 배경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 유백(이병헌)과 그런 유백에게 배신당한 월소(전도연), 그리고 이들에게 복수의 칼날을 겨누는 소녀 홍이(김고은)의 이야기를 그린 무협영화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 '인어공주'에 이어 전도연과 박흥식 감독과 함께 한 세 번째 작품이다. 전도연은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 그 중에서도 유백과 월소의 절절한 감정에 끌렸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나리오 속 이야기가 강렬했어요. 그 강렬함 때문에 액션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맹인 캐릭터라는 점을 인지 못할 정도였죠. 유백과 설이는 여러 가지로 복잡한 마음이는 캐릭터인 반면 월소는 하나의 감정만으로 끝까지 가는 인물이에요. 어떻게 보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지독한 여자죠. 감독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를 지키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생각에 저도 동의했죠."
전도연은 "영화에 담겨 있는 월소의 시간은 유백의 배신 이후 멈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내내 월소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유백의 배신 이후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된 것처럼 월소는 감정도 감각도 거세된 인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격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장면일수록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더 속으로 안으려고 노력하면서 연기에 임했다.
영화 속 전도연의 감정 연기는 크게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럼에도 전도연 스스로 '협녀'가 부족하고 아쉬운 작품이라고 느끼는 것은 바로 맹인 검객으로 보여준 액션 연기 때문이다. 무거운 검을 들고 하는 액션 연기가 쉬울 리 없다. 그런데 전도연은 맹인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해 눈도 깜박이지 않고 힘든 액션을 직접 소화해야 했다. 물론 촬영 현장에서는 모니터로 자신이 연기한 모습을 확인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를 스크린에서 본 순간 미처 몰랐던 자신의 부족함과 마주하게 됐다.
"사실 한계에 많이 부딪힌 작품이었어요. 눈을 안 깜박이고 버티는 것이 정말 고통스러웠거든요. 눈을 깜박이는 건 반사 신경이잖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걸 알았죠(웃음). 늘 영화를 처음 볼 때 제 연기만 보여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협녀'는 제 부족함이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라 상처나 실망이 컸어요. 하지만 제가 인정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빠르거든요(웃음).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속상함을 오래 가져가지는 않아요."
전도연은 '협녀'를 통해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낀 것조차도 배우로서의 성장이라고 말했다. 매 작품마다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꾸준히 성장해온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연기의 부족함과는 별개로 '협녀'에 대한 기대도 크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한국적인 무협영화가 더운 여름 관객에게 시원함을 전하기를 바라고 있다.
"예전에는 화면 속에서 예뻐 보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평상시의 내 모습이 제일 예뻐야 한다고 생각했죠. 물론 지금은 화면에서도 예뻐 보이고 싶지만요(웃음). 연기할 때마다 백퍼센트 완벽하게 맡은 인물이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에 가까운지 많이 생각하면서 연기하려고 해요.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나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맡은 인물의 것인지를 늘 생각해요. 그런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집중하고요."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