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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이맹희 은둔의 삶, 왜?…'묻어둔 이야기'

아버지의 삼성 '복귀' 의사에 불복…차남의 '모반' 개입 오해

호암 소실, 구라다상과의 관계는 소설일 뿐

/고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 회장.



[메트로신문 염지은기자] "아버지와의 결별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가장 큰 원인은 아버지가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제야 모든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지만 당시 아버지는 '70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그룹으로 다시 복귀하겠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말하자면 내가 아둔해서 그걸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1993년 낸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에서 삼성가의 장남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은 삼성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과의 애증의 삶을 살았던 사연에 대해 이같이 고백한다.

삼성은 고인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 7년동안 정열을 불태운 곳이다. 왜 갈등을 겪게 되었고 결국 삼성에서 나오게 됐을까.

호암이 장자승계 원칙을 깨고 고인을 삼성 후계 구도에서 제외, 3남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을 맡긴 이유로는 경영 능력 부족과 청와대 투서 사건 등으로 알려져 있다.

1966년 삼성 계열사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 적발 사건(한비 사건)으로 재벌의 도덕성 문제가 크게 부각되자 호암은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난다. 이후 1967년 7월 맹희씨가 삼성의 총수 대행으로 나섰다. 하지만 2년 후 해외 100만 달러 밀반출,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의 탈세 등 청와대 투서 사건이 불거졌다. 호암이 맹희씨가 투서를 했다고 믿었고 이후 호암과 사이가 멀어지며 삼성을 떠나게 됐다는 것이다.

고인은 하지만 자서전을 통해 "이 문제에는 절대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맹세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본인이 투서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수차례 강조한다.

자서전에 따르면 투서 사건은 차남 창희씨의 '모반(謀反)'이었다. 한비 사건으로 6개월 정도 형을 살고 난 창희씨가 기업 운영은 전부 형인 고인이 맡고 있고 옥살이까지하며 고생을 했던 자신은 배제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는 것이다.

이후 이병철 회장은 서서히 다시 삼성에 복귀했으며 맹희씨는 서서히 삼성에서 밀려났다.

고인은 삼성을 떠나게 된 결정적 이유를 '아버지의 복귀 의사'라고 기술하고 있다. 한비 사건을 기점으로 삼성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박정희 정권은 1970년을 넘기며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정부와 삼성의 관계가 부드러워지자 호암이 서서히 삼성의 경영자로 컴백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1973년 여름. 호암은 고인을 불러 '니 지금 명함을 몇개나 가지고 있노?'라고 물었고 '니가 다 할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당시 고인은 삼성전자·중앙일보·삼성물산·제일제당·신세계·동방생명·안국화재·제일모직·성균관대·삼성문화재단 등의 부사장, 전무, 상무, 이사 직책으로 17개의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호암은 의논조로 '이건 하기 힘들제?', '이건 너 할 수 없제?'라고 하며 연필로 직함들에 줄을 죽죽 그었다. 그렇게 줄을 긋고 삼성물산, 삼성전자, 제일제당의 부사장 직함 3개를 남겨 두었다. 고인은 그제서야 사태를 깨달았다고 했다.'아, 아버지가 나보고 물러나라고 하시는 구나.'

이후 호암은 한걸음씩 회사 내부의 마찰을 줄이면서 다시 복귀를 했고, 고인은 점차 삼성과 멀어졌다.

호암은 1976년 후계자로 이건희 회장을 공식 지목했고 이 회장은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1987년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후 10년 만인 1997년 삼성가는 이건희 회장의 삼성, 이재현 회장의 CJ, 이명희 회장의 신세계로 계열 분리된다.

'묻어둔 이야기'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금기(禁忌)도 공개돼 흥미롭다.

고인은 자신이 삼성의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호암과 불화가 있게 된 이유가 구라다상을 두고 호암과 묘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말하기도 부끄러운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썼다. 삼성을 소재로 한 '유리상'이라는 소설에 나온 이야기로 그야말로 소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인에 따르면 호암은 일본 여자 구라다상을 소실로 두고 있었고 둘 사이에 태어난 태휘, 혜자를 호적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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