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요즘 저의 슬로건은 '비욘드 더 힙(beyond the hip)'이에요." '오피스'(감독 홍원찬)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고아성(23)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로운 것만 찾다 보면 그 새로움이 무의미해지잖아요. 그 속에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자는 뜻이에요." 이 말이야말로 배우 고아성에 대한 가장 적확한 설명일 것이다.
'오피스'는 고아성이 '우아한 거짓말'을 마친 다음 선택한 작품이다. 평소 좋아했던 스릴러 장르라 끌렸다. 고아성은 정규직을 꿈꾸는 인턴사원 이미례 역을 맡았다. 고등학생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나이에 어울리는 캐릭터, 그러면서도 독특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영화는 일가족을 살해한 평범한 가장이 직장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실적과 매출로만 능력을 평가 받는 회사라는 공간이 사람의 내면을 피폐하게 만드는 과정을 공포와 스릴러의 화법으로 풀어냈다. 이미례는 사건의 중심에서 자신도 모르게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고아성이 이전까지 보여준 적 없었던 깊은 감정 변화가 인상적이다.
직장 생활 경험은 없었지만 이미례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조직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갈등, 자격지심과 열등감 등은 한국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되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작품마다 예민한 부분이 있었어요. '우아한 거짓말' 때는 누군가를 잃은 유가족의 마음을, '풍문으로 들었소'에서는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출산을 연기해야 했죠. 그럴 때는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심사위원이 되는 거죠. '오피스'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연기의 목표는 역할과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잖아요.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목표니까요."
평범한 20대로 등장하는 이미례는 영화 속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감정적으로 깊은 변화를 겪는다. 이미례가 느끼는 스트레스가 일상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다. 감정의 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도 됐다. 힘든 촬영이 될 것이라 예감했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작업은 순조로웠다. 스크린 밖에서 늘 돈독했던 배우들과의 호흡이 편안한 작업에 한몫을 했다.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촬영하면서 "정말 연기를 잘했다"고 만족한 장면이 완성된 영화에서 편집됐기 때문이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미례의 감성적이고 순수했던 과거를 보여주는 신이었다. '오피스'에서 고아성이 미례의 감정에 가장 깊이 빠져든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교복을 입고 등장해 친구와 노래를 듣는 장면이었어요. 제작부에 이야기해서 노래를 몇 개 들려달라고 했는데 마이클 잭슨의 '유 아 낫 얼론(You Are Not Alone)'이 나오더라고요. 촬영 마지막 날이기도 했고 감정도 많이 올라와 있는 상태라 저절로 눈물이 나더라고요. 완성된 영화에서 편집돼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지금 영화가 더 간결하게 나온 것 같아요."
영화에는 "사람은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대사가 등장한다. 성실하게 살아왔으나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눈치껏 세상과 타협하며 성공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물론 이들 모두 다 회사라는 조직이 만들어낸 피해자임을 영화는 강조한다. 영화 속 이미례는 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고아성은 "나도 이미례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고아성은 새로운 것을 찾아 묵묵히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가 그랬고 짧게나마 출연한 영화 '뷰티 인사이드'가 그랬다. 홍상수 감독과 함께 작업한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찍어서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럼에도 재미있는 경험"으로 남았다. 지금 촬영 중인 '오빠 생각'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하며 행복한 기운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맛보고 있다.
"언젠가부터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접근방식이나 개봉할 때의 떨림,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의 설레면서 읽는 마음이 비슷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더 새로운 걸 하고 싶어요.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 자꾸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작품 수도 늘어나고 드라마도 하게 되고 홍상수 감독님처럼 새로운 방식의 영화도 찍게 됐어요. 항상 머릿속으로 생각해요. '비욘드 더 힙'이라고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