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사극 영화하면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웅장한 세트, 화려한 의상과 미술 등의 볼거리가 그렇다. 그러나 '사도'(감독 이준익)는 그런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최근 유행하는 팩션이 아닌 고전적인 정통 사극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배우들의 연기가 오롯이 기억에 남는다. 그 중심에 바로 송강호(48)가 있다.
'사도'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임오화변을 다룬다.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둔 채 죽게 한, 역사 속 가장 끔찍한 비극으로 기록돼 있는 사건이다. 이준익 감독은 임오화변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가장 보편적인 관계로 접근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송강호가 '사도'를 선택한 이유도 바로 임오화변을 정공법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송강호가 연기하는 영조는 고독한 왕이다. 모두가 우러러 보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지만 그의 마음은 불안과 콤플렉스로 가득하다. 어머니가 천민 출신이라는 사실, 그리고 형을 독살했다는 의혹 속에서 영조는 어떻게든 왕권의 정통성을 지키고자 애쓴다.
송강호는 "영조대왕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실제 역사 자료를 접하면서 영조가 처한 상황과 심정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독한 영조의 인생이 영화에 묻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걸음걸이와 목소리에도 변화를 줬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미화나 왜곡 없이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 영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단 한 마디도 애드리브가 없었다"는 그의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영조가 인원왕후(김해숙)와 대립하는 장면을 좋아해요. 그때 유일하게 영조의 과거가 보이더군요. 친모가 아닌 인원왕후에게 윤허를 받아야만 왕이 될 수 있는 영조를 보여주는 장면이거든요. 영조가 갈구한 것은 수많은 사대부 앞에서 떳떳한 정통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영조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좋아합니다."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는 영화인만큼 연기하는 재미가 남달랐을 법하다. 송강호는 "아무래도 다른 작품에 비하면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송강호의 열연이 영화 속에서 그만큼 빛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이준익 감독의 공으로 돌렸다. "화려한 미쟝센처럼 연출자로서의 예술적인 터치보다 인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이준익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깊은 콤플렉스를 지닌 영조처럼 배우 송강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저는 왕도 아니고 일반 서민이기 때문에 그런 콤플렉스는 없다"며 호탕한 웃음을 보였다. 스크린 속에서는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그도 일상에서는 여느 아버지와 다를 것 없다. "아들은 경상도 사람인 나의 무뚝뚝함을 닮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그런 친근함을 엿볼 수 있었다. '사도'에 이은 차기작은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가제)이다. 송강호는 "'사도' 전까지 쉬었으니 웬만하면 다시 작품을 쉼 없이 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