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영화 '통증' 이후 권상우(39)는 한동안 스크린에서 멀어져 있었다. 아쉬운 흥행 성적에 회의감이 들었고 고민도 생겼다. 그러나 힘들었던 시간은 권상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가 4년 만의 영화 복귀작으로 '탐정: 더 비기닝'(이하 '탐정', 감독 김정훈)을 선택한 이유다.
'탐정'은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물이다. 평범한 가장인 두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버디무비이기도 하다. 권상우는 형사를 꿈꿨으나 지금은 만화방을 운영하며 아내와 두 아이를 먹여 살리는 강대만 역을 맡았다. 실제로도 두 아이의 아빠이기에 강대만에 깊이 공감했다. "30~40대 배우의 과도기를 헤쳐 나갈 작품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아내 손태영이 시나리오를 본 뒤 권상우에게 "자기가 하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작품 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탐정으로서 대만에게는 크게 끌리지 않았어요. 사건을 추리하는 과정은 어떤 배우가 해도 비슷할 것 같았거든요. 대신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대만의 모습에는 여백이 많았어요. 실제 제 생활과도 비슷했고요. 밉상 같아도 사랑스러운 남편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는 추리물과 코미디의 경계를 넘나든다. 강대만과 강력반 형사 노태수(성동일)의 콤비 호흡이 웃음을 담당한다면, 이들이 힘을 합쳐 추리하는 과정은 긴장을 형성한다. 웃음과 긴장 모두 표현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을 법하다. 하지만 권상우는 "조금은 철없는, 그래서 인간적인 대만의 캐릭터를 보여주는데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최대한 힘을 빼고 연기했다.
"영(0)에서 시작하는 마음이었어요. 소위 말하는 권상우의 '리즈 시절'을 내려놓고 연기했죠. 현장에서도 마음이 편안했어요. 그래서 '권상우는 저런 역할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으면 위로가 돼요. 물론 헐렁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 쓰면서 연기했지만요(웃음)."
데뷔 초반 청춘스타로 유명세를 탔던 권상우는 최근 몇 년 동안 흥행에서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통증' 이후에는 슬럼프도 겪었다. 애정이 깊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지금껏 한 시나리오를 다시 받게 된다면 '통증'의 남순을 선택할 거예요. 멜로의 감성은 물론 남자의 아픔과 서툰 표현까지 있어 지금도 생각하면 찡한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이런 슬럼프가 없었다면 권상우가 '탐정'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연기를 보여줄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권상우니까 저렇게 연기하지 않겠어?'라는 말만 들어도 좋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는 힘든 시기를 견뎌낸 여유가 있었다. 물론 "흥행을 할 수 있다면 서운하지 않을 것"이라는 솔직함도 함께 말이다.
권상우는 "한 가지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에 깊이 빠져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하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제작자로 나설 계획도 하고 있다. 직접 쓴 시놉시스도 있고 시나리오도 개발한 상태다. 하지만 "아이들의 교육 문제도 걱정"이라고 말할 때는 '탐정' 속 강대만이 눈앞에 있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치열하게 고민하는, 극 중심에 서 있는 멋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에는 노선을 과감히 틀어서 많은 배우들과 다양하게 어울릴 수 있는 배우가 될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대로 된 액션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실 제가 진짜 준비한 몸을 보여드린 적은 없거든요(웃음). 60대가 돼도 액션도 잘 하고 개성과 위트가 있는 배우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