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 패터슨 "동기 없는 살인…범인은 환각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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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 "미란다 원칙?"
녹색계열의 수의를 입은 짧은 스포츠머리의 미국인 남성이 법정에서 처음으로 입을 뗐다.
18년 전 발생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법정에 선 아더 존 패터슨(36)이 혐의 사실의 요지와 변호인 선임 권리, 진술 거부 권리를 명시한 미란다원칙에 대한 고지를 들었을 때 긴장한 얼굴로 이 같이 되물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 심리로 8일 오전 대법정에서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패터슨은 통역에 의존해 1시간 20분가량 이어진 재판을 받았다. 그가 진범으로 지목돼 기소된 지 약 3년 만에, 범행이 발생한 지 18년 만에 재개된 재판이다.
이날 재판에는 사건의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부모와 당시 패터슨과 함께 현장에 있던 에드워드 리(36)의 아버지 이씨도 참석했다.
리씨는 1997년 4월 서울 이태원의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기소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현장에 함께 있던 패터슨은 흉기소지와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돼 1년 6개월·단기 1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1988년 8·15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검찰이 출국 금지 연장을 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건너간 패터슨은 16년 만인 지난달 21일 한국으로 송환되면서 이태원 살인사건을 둘러싼 재판이 재개됐다.
이날 검찰은 당시 패터슨이 조씨를 죽였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주변 인물의 진술과 함께 다양한 검증을 통해 패터슨이 이 사건의 진범임을 입증하겠다고 공소사실을 밝혔다.
패터슨의 변호인인 오병주 변호사는 "패터슨에게 죽였냐고 수차례 물었는데 아니라고 하더라.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리는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으로 패터슨이 자필로 쓴 진술서를 공개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고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3)씨가 8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아서 존 패터슨에 대한 살인 혐의 1차 공판준비기일 참석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사진=연미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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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변호사는 당시 검찰의 조사 방식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검찰 기록을 살펴보니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패터슨은 정확한 진술을 보인 반면 리는 혈압과 맥박이 뛰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기 없는 사건이다. 이런 일은 마약으로 환각 증세가 나타난 경우"라면서 "범행 직후 리가 밖으로 뛰쳐나와 우리가 사람을 죽였다고 웃고 낄낄댔는데 이것이 환각상태가 아니면 무엇이냐"고 말했다.
이날 오 변호사는 한번 처리된 사건은 다시 다루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원칙'을 거론하며 "패터슨을 처벌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살인죄 공소시효인 15년을 몇 달 앞두고 검찰이 무리하게 서류 기소를 했다면서 이 부분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얘기했다.
반면 검찰은 "대법원 판례 취지상 피고인이 유죄 확정 판결 받은 것과 다른 내용으로 기소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법정에 나온 리의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패터슨은 지금도 (살인을) 안했다고 하는데 나쁜 사람이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씨의 어머니 이복수(73)씨는 재판이 끝난 후 "우리는 패터슨이 범인인 걸 알고 있다. 중필이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리의 증인 출석과 관련해선 "죄가 없으면 증인으로 서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다음 공판준비기일은 오는 22일 오후 2시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