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아이유가 지난 23일 서울 이태원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챗쇼-한 떨기 스물셋'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로엔트리
[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이라고 노래하던 소녀는 이제 더 이상 오빠를 찾지 않는다. "한 떨기 스물셋 좀 / 아가씨 태가 나네 /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라고 어른스럽게 굴다가도 "얄미운 스물셋 / 아직 한참 멀었다 얘 / 덜 자란 척해도 / 대충 속아줘요"라며 말을 바꾼다. 20대 초반과 중반의 경계에서 겪게 된 고민과 생각들. 아이유(23)의 네 번째 미니앨범 '챗셔(CHAT-SHIRE)'는 지금 아이유의 가장 솔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음반이다.
아이유를 만난 건 지난 23일 서울 이태원의 한 공연장에서였다. 앨범이 발매된 날 저녁, 아이유는 자신과 동갑내기인 팬들과 함께하는 특별한 쇼케이스 행사를 가졌다. '챗쇼(CHAT-SHOW)-한 떨기 스물셋'이라고 이름 붙은 이날 행사에서 아이유는 새 앨범에 얽힌 이야기, 그리고 스물셋 청춘들의 고민을 같이 듣고 나눴다. 동갑내기가 모인 자리인 만큼 아이유는 친구를 대하듯 반말로 팬들에게 말을 걸었다. 팬들도 아이유와 오래 알고 지낸 듯 반말로 답하며 정겨운 시간을 만들었다.
가수 아이유가 지난 23일 서울 이태원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챗쇼-한 떨기 스물셋'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해 노래를 부르고 있다./로엔트리
이번 앨범은 아이유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음반이다. 수록곡 7곡 모두 작사에 참여했으며 직접 프로듀싱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수록곡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그리고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등 아이유가 좋아하는 책 속 캐릭터를 모티브로 삼았다. 일종의 콘셉트 앨범이라 할 만하다.
앨범 타이틀인 '챗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 체셔 캣에서 빌려온 제목이다. '잡답'이라는 뜻의 '챗'으로 철자를 바꿔 '잡담-주(州)'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이유는 "가사를 직접 쓰다 보니 이번 앨범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을 담은 곡들이기에 각각의 주제가 가볍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비춰지는 것은 싫어서 '이 모든 이야기는 나의 가치관이 아닌 그냥 잡설입니다'라는 뜻으로 '챗'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설명했다.
타이틀곡인 '스물셋'도 체셔 캣에서 모티브를 따온 노래다. 제목 그대로 스물세 살 아이유가 겪고 있는 고민을 담았다. "엄청 정신없는 노래야. 기승전결이 없잖아. 가사도 모순되는 문장의 나열이잖아. 그런데 이게 솔직한 지금 나의 상태야." 아이유는 스물세 살을 지나가고 있는 지금의 마음을 "진짜로 원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고 순간만 있을 뿐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난 영원히 아이로 남고 싶어요 / 아니 아니 물기 있는 여자가 될래요 / 아 정했어요 난 죽은 듯이 살래요 / 아냐 다 뒤집어 볼래 / 맞혀봐"라는 가사에는 그런 아이유의 솔직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이유의 네 번째 미니앨범 '챗셔' 커버./로엔트리
아이유의 솔직함은 이날 쇼케이스 현장에서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최근 화제가 된 장기하와의 열애 소식에 대해 '쿨'하게 답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요즘 정말 행복하다"는 아이유의 말에 어느 팬이 장기하와의 열애 소식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아이유는 "알려진 대로 만난 지는 2년쯤 됐기에 (연애가) 나의 행복지수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며 "앨범이 나온 것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그 순간의 아이유는 겹겹의 포장지로 감춰져 있기 마련인 아이돌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스물세 살을 오래 전에 지나온 어른들에게 아이유의 노래가 담고 있는 모순적인 감정과 고민은 그저 치기어린 청춘의 단면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날 쇼케이스에서만큼은 스물셋의 고민과 갈등은 그 무엇보다도 빛났다. 아이유는 연애, 가족, 그리고 꿈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팬들의 고민을 담은 사연을 읽으며 깊은 공감을 보냈다. 팬들과 함께 서로 "힘내라"라고 격려했다. 스타가 아닌 인간 아이유의 모습이 잠시나마 엿보였다.
가수 아이유가 지난 23일 서울 이태원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챗쇼-한 떨기 스물셋' 쇼케이스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로엔트리
아이유는 이번 앨범으로 방송활동은 하지 않을 계획이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예정돼 있지 않다. '왜?'라는 의문이 생겼지만 아이유의 솔직한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드라마 '프로듀샤'와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출연, 그리고 앨범 작업으로 바쁘게 지내온 지금 콘서트에 쓸 체력만을 남겨놓고 싶다는 것, 그리고 힘들었지만 행복함으로 남은 이번 앨범의 기억을 무리한 활동으로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유는 지금 다음달 21일과 22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의 공연으로 시작하는 전국투어에 모든 것을 쏟고 있다. 아이유의 솔직함을 느끼고 싶다면 놓칠 수 없는 공연이다.
"이번 미니앨범을 만들면서 진짜 힘들어 죽을 뻔 했어. 정말로 너무너무 힘들었어. 어떤 앨범도 힘들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이번은 하나부터 전부 다 생각해야 해서 정말 힘들더라고. 그래서 처음 앨범을 받았을 때는 눈물이 날 뻔했어. 8년 동안 활동하면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야(웃음). 부족함도 많은 앨범이지만 정말 하기 잘 한 앨범인 것 같아. 스물세 살에 이것 하나 얻었다 해도 억울하지 않아. 2015년에 이 앨범 한 장 얻았다는 것만으로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올해 한 일 중 가장 어려우면서도 해볼 만한 일이었어(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