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처음 성유리(34)를 만났을 때 조금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다. 3년 전 '차형사'가 개봉했을 때였다. 물론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진심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성유리는 인터뷰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기억에 남은 말이 있었다. "실제 성격은 털털해요. 친한 사람들은 잘 알죠." 3년이 지나서야 그때 말한 성유리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를 통해서였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는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을 잊고 지내온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옴니버스 영화다. 성유리는 까칠한 여배우 서정 역을 맡았다 그런 서정을 짝사랑하는 매니저 태영 역의 김성균과 호흡을 맞췄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따뜻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어요. 서정에도 공감이 많이 갔고요."
물론 성유리가 공감한 것은 서정의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가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공감했다. "처음에는 서정이 까칠하고 자기 위주인 전형적인 여배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니 서정은 욕구불만 때문에 화를 내는 것 같더라고요. 더 좋은 작품을 하고 싶지만 여러 상황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에 공감했어요." 성유리와 다른 점도 많았다. 자신의 답답함을 솔직하게 말하는 서정의 모습이 그랬다. "서정은 속마음을 막 터트리잖아요. 그래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대리만족도 했고요(웃음)."
성유리는 이번 영화에서 "상대방과 교감하는 연기의 재미"를 느꼈다. "이전까지는 그냥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시험 백점 맞듯이 연기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제 목소리에만 집중했죠. 그런데 지금은 상대방의 리액션에도 더 신경을 쓰려고 해요. 상대방과 교감하는 재미랄까요. 이번 작품에서 그런 재미를 가장 크게 느꼈어요." 상대 배우인 김성균과의 탄탄한 연기 호흡 덕분이었다. 영화 속에서 태영이 드라마 리허설을 통해 서정을 향한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는 신이 있다. 성유리가 이번 영화에서 연기의 재미를 가장 많이 느낀 장면이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어요. 서정이 태영에게 뽀뽀를 하는 것이요. 서정은 엄연히 남자친구도 있고, 태영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도 이미 눈치채고 있잖아요. 그런데 뽀뽀를 한다면 사람의 마음을 갖고 노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갔는데 성균 오빠가 대본에 없던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그게 정말 진심으로 느껴져서 뽀뽀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더라고요. 이런 좋은 멜로 배우를 만나 좋은 멜로영화를 찍어서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웃음)."
배우로 활동 영역을 옮긴 뒤에도 성유리에게는 핑클 시절의 '요정'이라는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녔다. 그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드라마에서는 억척스러운 역할도 맡았고, 영화에서는 상업성과 거리가 먼 작품들도 과감히 선택했다. "감독님들도 저의 이미지를 깨고 싶어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제 이미지가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성유리는 자신의 이미지가 오히려 자신만의 매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의 서정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성유리가 지닌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성유리는 "평소에는 의외의 개그감이 있다"며 웃었다. 물론 "판을 깔아줘야 개그가 잘 나온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말이다. "이번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성대모사도 하려고 했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어요. 다음에는 꼭 성대모사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얼른 영화를 해야겠네요. (웃음)." 성유리는 그렇게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데뷔 17년차가 될 때까지 좋은 일도 힘든 일도 많았죠. 그럼에도 잘 버텨준 저에게 고마움을 느껴요(웃음).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목표도 있어요. 정적이고 사연 많은 역할도 하고 싶고 액션 연기도 하고 싶거든요. 언젠가 찾아올 배우로서 변화해야 할 순간을 잘 넘기고 싶어요. 그렇게 아름답게 나이 먹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사진/손진영 기자so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