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나 비즈니스에서 '맞수'경쟁은 언제나 흥미를 끈다. 양쪽의 스타일이 같거나 달라도 관전의 묘미는 '치명적인 유혹'에 가깝다.
인수·합병(M&A)시장에도 시선을 끄는 흥미로운 게임이 있다. KDB대우증권 놓고 KB금융지주·미래에셋증권·한국금융지주가 벌이는 승부다. 특히 은행 DNA(KB금융지주)와 증권 DNA(미래에셋증권, 한국금융지주)의 싸움이란 점에서 재미를 더한다.
◆은행 DNA vs 증권 DNA
3일 금융투자(IB)업계에 따르면 대우증권 매각의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명분과 논리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우증권을 품을때 시장의 체질변화에 얼마나 기여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이다.
KDB산업은행은 지난 8월 금융자회사 매각을 발표하며 두 가지를 기본 방침으로 제시한 바 있다. '매각가치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매각을 진행하겠다는 것.
KB금융이 핵심전략을 '국민재산 증식 프로젝트'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윤종규 회장도 최근 KB금융 설립 7주년 기념식에서 '국민의 평생 금융파트너'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며 대우증권 인수를 통해 '국민을 부자로 만들기', '중소기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토종 증권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경쟁 상대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선 은행보다는 증권사가 인수하는게 시장발전을 위해 좋지 않겠냐"면서 "국내외 대형증권사를 포함한 다양한 인수합병(M&A) 기회를 적극 물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달 1조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발표하며 자금 사용 목적을 '인수합병'이라고 명시했다
미래에셋은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중개수수료)·투자은행(IB)의 상대적 약점을 보완하고 대우증권의 해외진출 노하우를 공유해 해외시장 진출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포석이다. 대우증권 인수는 덩치를 키우는 동시에 종합증권사로서 자산운용업에 이어 증권업계의 선두주자로 올라서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한국금융지주도 비슷한 논리다.
두 증권사가 대우증권을 품을 경우 자기자본 7조원의 초대형 증권사가 된다. 브로커리지에 의존하는 천수답식 경영에서 벗어나 글로벌 IB와 싸워볼 만한 힘이 생기는 셈이다.
은행 DNA의 KB금융지주 산하 KB투자증권도 은행자본을 기반으로 덩치를 키울 수 있다. 또 은행의 해외 네트워크와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빅3'의 전략에는 차이가 있지만 명분은 하나다. 자신이 포스트 자본시장을 이끌 적임자라는 것.
◆우열 가리기 힘들어
경험상 M&A에서 은행자본과 증권자본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90년대 라이벌이던 한국투자신탁(현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신탁(현 하나금융투자). 두 집안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3년 한국투자신탁이 현재 여의도 사옥으로 이전하자 바로 옆집 라이벌이었던 대한투자신탁은 사옥을 무조건 한투보다 높게 지으라고 했다. 대한투자신탁이 3층 더 높게 사옥을 짓자, 한국투자신탁은 '건물 연면적은 더 넓다'라며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현재 한국투자증권 빌딩 높이는 83m(20층), 하나대투증권 빌딩은 약 110m(23층)다.
20년이 지난 현주소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자본금이나 영업성적을 보면 하나금융투자(2015년 상반기 기준 자본 1조7135억원, 영업이익 996억원)와 한국투자증권(3조3078억원, 2827억원)이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미래에셋은 증권가에서 보기드문 토박이 증권자본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97년 미래에셋캐피탈을 만든 뒤 현재 미래에셋증권 등 20여 개 금융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금융그룹으로 키워 내면서 '샐러리맨 신화'를 썼던 화제의 인물이다
미래에셋은 최근 유상증자로 자본금이 3조7000억원으로 불었다. 업계 3위다.
그러나 NH투자증권이나 신한금융투자를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은행 산하에서 1위를 달리던 우리투자증권이 우여곡절 끝에 농협금융지주 품에 안긴 이후에도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산규모로 업계 10위권 밖에 머무르던 NH농협증권은 단숨에 업계 1위 증권사로 떠올랐다. NH투자증권은 올 상반기에 합병 관련 비용 등을 반영하고도 161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올 3·4분기까지 순이익이 2300억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신한금융그룹은 2002년 굿모닝증권을 신한증권과 합병한 후 대형 증권사로 키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