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탐욕'의 돈 잔치를 벌인다는 오명을 받은 은행권이 배당을 놓고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정부가 기업을 향해 배당을 늘리라고 하지만 배당을 늘리면 자칫 돈 잔치를 벌린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있어서다. 3·4분기 실적 부진도 선뜻 배당에 나설 수 없는 이유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BNK금융지주가 지난 1일 은행 배당의 포문을 열었다.
자회사인 부산은행이 보통주 1주당 261원의 현금배당을 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은행들도 배당규모와 시기를 놓고 저울질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 기업은행, BNK금융, DGB금융, JB금융 등의 지난해 배당성향(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배당금 규모)은 평균 16.97%였다.
세계 주요은행들의 평균 배당성향이 31~33%인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 밖에 안 된다.
따가운 사회적 시선과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 왔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고민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국내 은행의 한 부행장은 "저금리 시대가 굳어면서 비용대비 생산성과 효율이 떨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면서 "비은행 분야로 먹거리를 다양화하기 위해선 인수합병(M&A) 등이 필요해 배당 규모를 놓고 고민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KDB대우증권 인수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고민이 깔렸다.
정부의 '좀비기업' 퇴출 정책도 부담이다. 한계기업이 늘수록 은행들의 대손비용도 늘기 때문이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하락 추세를 보였던 국내은행 대출채권 부도확률 추정치는 2016년에 미국 금리 등 국제금리 상승에 따른 국내 시장금리 동반 상승 가능성과 한계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상승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를 반영해 2016년 국내은행 전체 대손비용은 올해와 비교해 10% 증가한 11조원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대손비용은 떨어질 가능성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당국이 기업 구조조정을 강조했고 그로인해 충당금전입액을 쌓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손충당금이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좀비기업들이 구조조정될 지 확정지을 수 없지만 2016년 대손비용은 올해와 비교해 10%보다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 된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국내 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률은 102.72%에 달했다. 영국(47.58%)·일본(56.01%)·독일(59.99%) 등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높은 적립률이다.
실적 전망도 어둡다.
금융연구원은 2016년 국내은행 당기순이익이 올해보다 12.5% 감소한 5조6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배당에 대해 정부가 지나치게 관여하는 측면은 있지만 국내 은행들이 고배당에 다시 나서기 보다는 장기 실적 향상을 통해 투자자와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영업 활동에서 창출한 자금에서 투자에 사용한 자금을 빼고 남는 여유 자금인 잉여현금흐름의 범위 내에서 배당을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정부가 무조건 '배당을 더 해라'는 식으로 지시하기보다 이익을 국내 은행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로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삼성증권은 국내 주요 은행들의 올해 배당성향을 24.2%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