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씨(44)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경제효과가 기대 이상일 것이란 소식을 접 할 때마다 남 몰래 웃는다. 직장 동료들은 남의 나라 얘기라며 손사례를 치지만 베트남 경제 덕에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는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해 미국 증시에 상장된 베트남 상장지수펀드(ETF)를 샀다. '해외 주식 직구'를 한 셈이다. 가욋돈이 생길 때마다 사들인 ETF가 1500만원어치. 이모씨는 "지난해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는데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며 "TPP 타결 이후 한달새 다른 주식투자 수익률을 웃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모씨가 요즘 관심있게 지켜보는 시장이 중국이다. '중국판 코스닥'인 선전 증시가 개방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선강퉁'(선전과 홍콩 증시의 교차 거래)시행에 대비해 PB센터를 찾아 뜰만 한 종목을 고르고 있다.
연 1%대 초저금리 시대가 굳어지면서 해외 주식직구에 나선 '강남 아줌마'가 다시 늘고 있다.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 들면서 국내 자산시장에서 과거와 같이 높은 수익을 기대할 투자처가 마땅치 않기때문이다. 한국보다 앞서 저금리가 지속된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엔캐리 트레이드 자금) 들은 일찌감치 해외에 눈을 돌렸다.
◆해외 주식 '직구족' 증가
16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3일 현재 보관 중인 해외주식보관 규모는 금액기준 7조1643억원이다. 10월 말 7조439억원보다 약 1203억원이 늘었다. 9월 6조1197억원 이후 세달 연속 증가세다.
해외주식 보관 잔량은 지난 6월 6조2550억원을 기록한 후 미국의 '9월 금리 인상설'이 퍼졌던 8월 6조320억원까지 감소한 바 있다.
국내 개인투자자는 해외주식을 직접 매수하면 예탁원에 주식을 보관해야 하는데 살 경우 잔량이 늘어난다. 반대로 주식을 팔 경우 잔량은 줄어 든다. 결국 예탁원 보관 잔량의 증감은 국내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직접 투자 규모의 변동을 의미하는 셈이다.
외화 주식 직접투자 결제금액도 올해 들어 13일 현재 5조6460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결제금액 2조7075억원의 두배가 넘는 수준이다.
금융권 PB센터 관계자는"중국의 경기 부양 기대와 '선강퉁' 시행이 예고되면서 일반 투자자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주부 황모씨(60)도 올 초 중국 본토 주식에 투자하면서 해외 주식 직구에 발을 들였다. 황 씨는 "중국은 시차가 없는 데다 한자를 써 기업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고 한국의 1980, 90년대 경제성장 경험을 토대로 투자처를 고를 수 있어 좋다"며 "증권, 자동차, 철도 관련 종목에 투자했더니 수익률 60%가 넘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후강퉁이 시행된 작년 11월 17일부터 올해 4월 16일까지 5개월간 국내 투자자들은 4조4418억 원 규모의 본토 주식을 거래했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최근 한 달 치를 더하면 6개월 만에 후강퉁 주식 거래는 5조원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투자 한계…해외 주목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뭘까. 불확실성에 내성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전망도 그리 나쁘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경제가 확장적 거시경제정책과 낮은 원자재 가격, 노동시장 개선 등에 힘입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면서 2.9%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존 전망치보다는 0.2%포인트 낮은 수치다. 세계경제는 내년에 3.3%, 이듬해인 2017년에는 3.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달러화 강세와 에너지 분야 투자감소를 겪고 있지만 민간소비와 기업투자 개선으로 성장세가 확대되면서 올 성장률 전망치가 2.0%에서 2.4%로 올라갔다. 중국은 종전 전망치인 6.8%가 유지됐다. 유로존은 저유가와 확장적 통화정책 기조에 힘입어 기존 1.4%에서 1.5%로 상향조정됐다.
신한금융투자 이승준 연구원은 "글로벌 경제, 특히 선진국 수요 불안이 클 때는 글로벌 공급사슬 구조가 약화됐지만 점차 정상화되는 과정"이라며 "2016년 미국 중심의 선진국 경기 부진이 완화되며 선진국 수요가 신흥국 수출 확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 달러에 묻어두는 '환 테크'족도 급증하고 있다. 대표적인 달러 투자 상품인 달러예금 잔액은 494억5000만달러로 사상 최고에 달했다. 반면 투자 메리트가 사라진 위안화예금은 만기도래 정기예금이 이탈하면서 잔액의 감소세가 이어졌다. 10월 말 위안화 예금 잔액은 71억9천만달러로 9월 말보다 22억4천만달러 줄었다. 이는 2013년 12월말(66억7천만달러) 이후 22개월 만에 최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