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임금님'. 안데르센 동화 중 손꼽히는 명작이다. 사기꾼 재봉사가 임금을 찾아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옷이 완성된 날 왕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옷은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왕은 있지도 않는 옷을 입고 즐거워 한다. 신하들은 멋진 옷이라고 칭찬한다. 한 아이가 거리를 행진 중인 왕을 보고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외친 뒤에야 왕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중소기업에 대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살생부를 내놨다. 총 175개 기업이 대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한 해 3차례나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한계기업을 정리했던 2009년(512곳)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칼 날은 다시 대기업으로 향하는 모양새다.
나만의느낌이었으면 좋겠다. 금융당국이 대기업 구조조정에 머뭇거린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부담을 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대기업의 썩은 환부를 도려낼 메스의 날이 생각보다 무딜 것이다"는 시각이 적잖다.
덕분일까. 기업들도 "이번에도 어떻게든 넘어가겠지. 버티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흔히 말하는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논리다.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구조조정을 외치던 정부가 대우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등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동원해 각각 4조2000억원, 4200억원의 자금을 쏟아붓기로 했으니 말이다.
유능한 외과의사라면 환부가 곪아터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초기에 수술하라고 권한다. 하찮은 종기라도 다른 부위로 전이되거나 썩은 부위가 커지기 전에 조직을 도려내야 회복도 빠르고 부작용도 없다.
지금이 한국경제의 썩은 환부를 도려낼 '골든 타임'이다.
정부나 기업 모두 '군중보다 아이의 목소리를 귀에 담을 때'라고 본다.
잘못된 판단은 한국 경제를 공멸로 이끌 뿐이다.
김진성 우리금융연구소 실장의 글 한구절을 소개한다. "기업의 자발적인 사업포트폴리오 조정을 독려하고, 기업 구조조정의 유형별로 소위 '시범케이스'가 아닌 '성공적인'기업 구조조정 모범사례를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k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