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장병호 기자] "안 좋은 일을 하는 사람." 백윤식(68)은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에서 연기한 이강희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만큼 배우로서 선뜻 출연을 결심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백윤식이라는 배우가 꼭 필요한 역할"이라는 우민호 감독의 말이 백윤식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촬영이 시작된 순간부터 그 어떤 딜레마나 괴리감 없이 평범한 생활인으로 역할에 녹아들었다.
권력의 세계는 달콤하면서도 잔혹하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꿈꾸지만 동시에 그 권력으로부터 내동댕이침을 당한다. '내부자들'은 바로 이 권력을 둘러싸고 각자 다른 야심으로 움직이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이병헌이 연기한 정치깡패 안상구는 하루아침에 자신을 화려한 삶에서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권력에 복수의 칼날을 간다. 조승우가 맡은 검사 우장훈은 '빽'도 '줄'도 없이는 출세할 수 없는 세상에 승부수를 내건다. 안상구와 우장훈은 권력의 세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백윤식이 연기하는 이강희는 이들이 꿈꾸는 그 세계에 조금은 가까이 다가서 있다. 유력 보수지의 논설 주간위원인 이강희는 권력과 맞서며 갈팡질팡하는 안상구와 우장훈과 달리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침착함을 보여준다. '내부자들'의 무게감을 담당하는 캐릭터와도 같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이강희는 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전작들도 그런 역할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귀결점은 긍정적인 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우민호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들었는데 젊음의 기운이 전해지면서 아주 명쾌하더라고요. 그리고 윤태호 작가의 원작 웹툰을 받았는데 첫 페이지에 우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쭉 적혀져 있었어요. 그게 결정적이었어요(웃음)."
백윤식은 이강희를 "겉으로 보면 굉장히 정적인 엘리트지만 움직임은 굉장히 센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안상구나 우장훈은 겉으로는 동적으로 보이지만 권력자는 아니에요. '설계사'라는 설명처럼 이강희야말로 권력자죠." 안 좋은 일을 하는 역할인 만큼 딜레마를 느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백윤식은 그런 이강희마저도 '생활인'으로 이해하고 연기하고자 했다.
"이강희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면 안 된다고 봤어요. 그런 게 지나치면 관객을 통제하게 되니까요. 감독의 연출 계획도 따라야 하고요. 그냥 이강희도 생활인이라고 생각해요. 인간 자체가 천태만상이 있는 거니까요(웃음)."
영화 후반부, 이강희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장면은 이강희의 무시무시함을 잘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논리 정연한 말로 검찰과 기자들을 상대하는 모습에서 언론인이자 권력가로서의 이강희의 캐릭터가 잘 드러난다. "언론인 특유의 뉘앙스라고 할까요? 그런 걸 슬쩍 내보이는 거죠. 대사도 무척 길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면 거기에서 맛이 느껴져요. 그렇게 대사의 맛을 느끼면서 연기하는 거죠." 그 무거운 대사의 '맛'만으로도 백윤식의 변함없는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배우에게는 연기하기 흥미로운 캐릭터일 수 있다. 그래서 백윤식은 이강희를 "캐릭터만으로 본다면 좋은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해봤지만 여전히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은 많다. 물론 "다음에도 악역이 들어온다면 조금 더 생각해볼 것 같다"는 단서는 있지만 말이다. 차기작도 준비 중이다. 백윤식은 "준비 중인 작품이 있지만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며 "조만간 또 만나 뵐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