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의 큰 별이 졌다. 평생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성취에 앞장섰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결국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난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만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돼 9선까지 지냈다. 최연소 당선과 9선의 기록은 우리 의정사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기록이 아니라 역사의 고비마다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민주화의 대의에 몸바쳤다는 것이다.
'YS"라는 애칭으로 통하던 김 전 대통령은 1969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개헌 계획에 반대한 이후 언제나 집권세력의 독재에 맞서왔다. 엄혹한 유신시절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맞서다 헌정사상 유일무이하게 의원직 제명까지 당하면서 유신체제 종언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 치하에서 민주화운동의 횃불을 당긴 것도 김 전 대통령의 목숨을 걸고 23일간의 단식투쟁이었고, 5공정권의 서슬퍼런 칼끝을 무디게 한 것도 그의 굽힐 줄 민주화 투쟁의지였다. 그것은 마침내 1987년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김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 하나회를 제거하고 금융실명제 등의 해묵은 개혁과제를 과감하게 실행했다. 특히 하나회 제거는 이 나라에서 군사쿠데타의 망령을 영원히 걷어낸 불멸의 쾌거였다. 과오도 있었다. 아들이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고, 무리하게 고속성장을 추구하다가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그렇지만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시정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무리하게 통과된 노동법 개정안이 노동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구속자 석방과 수배자 해제를 통해 수용했다. 아들이 구속됐을 때도 주저없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언제나 대도를 지켰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로서 우뚝서게 된 것은 그의 결단과 한결같은 헌신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굳은 신념과 의지로 민주주의 쟁취에 앞장서 온 김 전 대통령도 생노병사의 필연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마침내 이승과 작별했다. 그의 몸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그의 정신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행복의 섬'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