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우리가 필요한 것. 통합(統合), 화합(和合)."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22일 빈소를 찾은 김종필 전 총리와 대화 중 생전 부친이 이 같은 유훈을 남겼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 발전과 민주화를 위해 YS와 고 김대중(DJ) 대통령이 경쟁과 협력 관계를 이어갔던 것처럼 그들을 주축으로 한 상도동계(YS)와 동교동계(DJ)도 국민통합과 화합에 힘쓰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민주화운동 동지이면서도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었던 두 계파는 '양김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화합의 불씨는 오는 26일 치러질 YS의 장례식에서 시작될 전망이다.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주도로 치러지는 장례식에서는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모두 상주로 서게 될 예정이다.
애초 DJ 서거 당시 민추협 소속 상도동계 인사가 장의위원에서 배제된 것을 두고 이번 장례식에서 동교동계를 빼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통합과 화합'한 강조한 YS의 유훈을 따라 두 계파를 포함한 300여명이 장의위원으로 모두 결정된 것이다.
상도동계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김덕룡 전 의원 등도 "YS가 말한 건 화합과 통합이니 다 같이 가야 한다" "YS가 끝까지 주창했던 화두가 바로 그런 것"이라며 상도동 중심이 아닌 민추협 중심의 장례가 치러지는데 동의했다. 민추협은 YS와 DJ가 전두환 정권에 맞서기 위해 창설한 단체다.
그간 상도동계와 동교동계는 YS와 DJ의 대선 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1987년 이후 정치적 갈등과 반목을 거듭해왔다. 해묵은 갈등은 YS가 2009년 병상에 있던 DJ를 방문, 전격 화해하면서 해소되기 시작했다. 갈등이 시작된 지 22년만이다. 이후에도 상도동계 핵심 인사들이 DJ서거 100일 추모기도회에 참석, YS주재로 두 계파가 만찬을 갖기도 했다. 2010년 새해 첫날에는 동교동계 인사들이 대규모로 YS 자택을 방문해 교차세배를 하면서 평행선을 좁혀나갔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도 YS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상도동계는 대부분이 여권에 속해있으며, 동교동계는 야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YS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재평가가 그만큼 큰 의미를 가진다는 얘기다. 실제 새정치연합 '민주60년창당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YS 서거를 몇 시간 앞둔 21일 밤 오후 11시까지 "YS의 업적을 강조해야 한다"는 내용의 회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화해 기류는 YS빈소 조문 행렬로 이어졌다.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상임고문은 23일 YS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서 "김영삼 대통령께서 신민당 총재 경선에 나갔을 때 김대중 대통령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동교동계 출신인 김옥두 전 의원도 "상도동과 동교동은 계보를 떠나 민주주의를 위해 소신껏 일했던 동지들"이라며 "YS 정신을 가진 분들과 DJ 정신을 가진 분들이 다시 뭉쳐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되도록 활동해야 한다"고 고인의 뜻을 강조했다.
일각에선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각각 여당과 야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 제약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계파가 통합과 화합을 강조한 YS와 DJ의 큰 뜻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내몰릴 경우 갈등과 반목을 거듭한 1987년으로 돌아갈 것이란 전망이다.
두 계파 인사들 상당수가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상도동계의 막내격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아직 건재하고, 범동교동계에선 전병헌 최고위원,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 일선에 있어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