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장 규모(상), 금융 인프라(하)'. 지난 2003년 세계적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발표한 국내 금융 산업 성적표다. 대만 타이베이와 함께 서울은 최하위권에 속했다.
국내 금융시장의 경쟁력은 어느정도 달라졌을까.
영국계 컨설팅그룹인 지/옌(Z/Yen)이 지난 9월 발표한 올해 글로벌금융센터지수(GFCI)에서 서울은 6위를 차지했다. 서울의 GFCI는 지난해 9월 조사에서 8위였다가 올해 3월 7위로 상승한 데 이어 이번 한단계 더 올라선 것이다. 샴페인을 터트려도 좋을까. 우리의 경쟁 상대인 홍콩(3위), 싱가포르(위)와는 여전히 격차가 있다.
한국 경제가 위기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원화 국제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갈 길 먼 원화 국제화
수출액 세계 6위(5727억달러), 수입액 세계 9위(5255억달러), 무역 규모 세계 8위(1조982억달러). 지난해 대한민국의 무역 성적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3분기 중 결제통화별 수출입' 자료에 따르면 수출기업들이 대금을 원화로 받는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수입 할 때 원화로 지급하는 비중도 4.7%에 그친다.
이는 국제 교역시장에서 원화 지위를 짐작케 한다.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은 "한국 무역 거래에서 원화 결제 비율이 2~3%밖에 되지 않아 무역을 하는 중소기업 등은 환율 위험에 지나치게 노출된 상황이다. 중국 등 가까운 나라에서라도 지금보다 원화가 더 통용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꼭 원화를 국제화할 필요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원화의 위상 강화와 국제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만 '환투기 세력'에 원화가 공격받을 수 있고 정부의 환율 통제력이 약해질 수도 있다.
원화가 환투기 세력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가 해외에서 원화를 못 빌리게 하고 거래를 제한한 이유가 바로 투기꾼들의 공격 때문"이라며 "특히 환율 변동성이 심한 우리나라의 경우 투기꾼들의 공격에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원화가 해외 거래 제한에서 풀리면 결제와 투자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그동안 원화는 일부 무역 거래에서만 사용될 뿐 자본 거래와 원화 예금 등에서 제한돼 반쪽짜리 통화 역할에 그쳤다.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도 낮출 수 있다.
임준환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내 대기업이 달러가 부족해 해외에서 달러 펀딩을 한 사례가 있었는데, 채권발행 시에는 단기 환율변동성이 기업재무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원화 국제화 부진으로 기업들이 보이지 않는 비용(코스 트)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고 지적했다.
거래 제한이 풀리면 원화의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외국인의 국내 자산 투자도 늘 수 있다.
◆여건은 충분,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원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기 위한 기본조건은 이미 갖췄다.
우리나라 국가 신용등급은 'AA-'(S&P)이다. 현재 3대 신용평가사에서 모두 AA- 이상의 등급 받은 나라는 한국,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영국, 프랑스, 사우디 정도에 불과하다.
국채의 해외 수요도 꾸준하다.
우리나라 원화도 국제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내년에 그 첫발을 내디딘다.
한·중 양국 간 합의에 따라 내년 상반기 중국 상하이에서 원·위안화 직거래시장이 열리면 원화가 해외에서 직접 거래되는 첫 사례가 된다.
상하이 원·위안화 직거래시장 개설은 지난해 12월 1일 서울에 직거래시장이 열린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위안화의 빠른 국제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맥락에서 해외에서 비거주자가 자본거래 목적의 원화 거래를 제한하는 현행 외국환 거래 규정을 고칠 예정이다.
해외에서도 원화를 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점진적으로 원화 국제화를 추진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원화의 통용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상하이 원·위안 직거래시장의 거래 추이를 지켜본 이후 제한된 범위에서 다른 지역에서의 원화 직거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