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엔지니어링이 연말 증시의 주인공이 됐다. 상장 폐지 위기에 내몰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특단의 사재 투입 카드를 꺼내들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주주가치 희석에 대한 우려를 단번에 잠재운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참여 여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중동 사업장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손실 여파 탓에 4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본잠식으로 상장폐지 직전까지 내몰린 상태다.
◆이재용 '사재 투입' 카드에 주가 급등
8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은 전날보다 13.98% 급등한 1만5900원에 마감했다.
기업 회생에 대한 기대감이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전날 이사회를 열고 1조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추진을 결의했다. 이를 위해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발행 가능 주식수도 기존 6000만주에서 3억주로 늘려 놓았다.
신주발행 주식 수는 1억5600만주로, 예정 발행가는 할인율(15%) 등을 적용해 주당 7700원으로 정했다. 구주 1주당 신주 배정 주식수는 3.3751657주다.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후 기존 주주들이 포기한 실권주를 일반 투자자에 공모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주 상장 예정일은 내년 3월 2일이다.
이에 따라 1대 주주 삼성SDI(지분 13.1%)와 2대 주주 삼성물산(7.8%)은 이번 유상증자에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번 유상증자 과정에서 미청약분이 발생하면 최대 3000억원 한도 내에서 일반공모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는 이 부회장의 증자 참여로 삼성엔지니어링의 유상증자 성공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윤호 동부증권 연구원은 "삼성 SDI와 삼성물산, 우리사주조합(20%), 이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를 가정하면 유상증자 물량의 약 66%를 확보하게 된다"며 "이 부회장의 사재 투입으로 유상증자 성공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평가했다.
향후 삼성엔지니어링의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생기고 있다.
변성진 BN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 부회장이 실권주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은 삼성그룹이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주주가치 희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유상증자 성공 가능성은 높게 보지만 주식수가 늘어나 주당 가치는 크게 희석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 약속으로 재무적 안정성은 빨리 회복되겠지만 기업가치 추정과 주가 예측에는 더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선택의 기로에 선 국민연금
국민연금의 증자 참여여부도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은 올해 8월11일 기준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3.97%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SDI(13.10%)와 삼성물산(7.81%)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에 있는 계열사 보유 지분을 제외하면 단연 '큰손' 주주로 꼽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권주가 발생할 경우 최대 3000억원(20%)까지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국민연금이 증자에 불참하면 삼성엔지니어링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국민연금은 일단 개별 투자 종목에 대한 언급을 삼가면서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유상증자에 관한 국민연금의 기금운용규정은 '기금의 이익이 최대화되도록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삼성엔지니어링의 중·장기적인 성장성을 고려한다면 참여하는 게 맞다"면서 "손실 우려와 예상되는 비난 여론을 고려하면 쉽게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과 정부의 기금 지배구조 개편안 등에 대한 의견 차이로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갈등을 빚다가 잇달아 교체되는 등 인사 내분에 휩싸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