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NH농협은행장(사진) 내정자의 첫인상은 옆집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온화한 미소다. 뱅커라기 보다는 제조업체 공장장의 모습이었다.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도 그랬다. 첫 만남이었지만 금새 푸근함을 느낄 정도다. 안방 살림을 책임지던 그가 이제 1만4000여 명의 동료들과 NH농협은행의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그의 꿈은 '고객과 함께하는 성장'이다.
"같은 수익을 내준다면 고객은 어떤 은행이 더 믿을만 한가, 내가 꼭 필요할 때 옆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농협은행이 그렇다면 농협과 함께하려 하지 않겠나."
그게 은행의 역할이기에 그 방향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임 내정자가 생각하는 '고객'과 'NH농협은행' 그리고 '사회'의 가치가 함께 크는 선순환 구조는 무엇일까.
"은행의 발목을 잡아온 규제는 많이 풀렸지만, 은행 영업창구에서 소비자들이 느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정작 고객이 필요할 때 은행은 옆에 없다. 이는 국내 은행들의 공통 해결 과제이기도 하다. 농협은행의 미래는 얼마나 많은 고객이 믿고 거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내정자는 대화 내내 '고객' 이란 단어를 꺼내고 또 꺼냈다.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 행장은 말로 하는 동행이나 남들이 다 하는 것과는 다른, 농협의 진정성이 우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김용환 농협금융회장의 생각과도 같다.
"고객 신뢰는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관리해 그 이익을 돌려줄 수 있는 건전성과 수익창출 역량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의 여신 심사기법, 사후관리 프로세스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겠다." (2015년4월29일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취임식)
현장 영업에 대한 욕심도 컸다. 이 행장은 앉아서 하는 영업은 필요 없다고 했다.
"앞으로 '영업제일주의'를 강조할 것이다.강력한 영업력을 토대로 리딩뱅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할 것이다."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달라진 고객 니즈는 기존 방식에 안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금리가 내려가면 금융기관은 예대마진이 줄어들어 손익관리에 어려움이 있다. 고객과 신한의 가치를 함께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은행권이 시끄럽다. 금융 당국은 성과와 무관하게 고액 연봉을 챙기는 은행권의 임금 체계와 붕어빵 영업시간을 손보겠다고 벼른다. 하지만 난 생각이 좀 다르다. 이는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조직 내 효율의 문제라 생각한다. 금융개혁이 소비자 중심에 맞춰져야 한다. 또 은행 스스로 해야 한다."
24시간 은행이 문을 연다고 고객 서비스가 더 잘되고, 수익이 늘어날 리가 없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합리적인 경쟁체제를 도입해 은행 효율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고 강조했다.
금융 당국도 개혁의 방향을 틀어 "앞으로 남은 금융 개혁 과제는 성과주의 확산"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직원들의 월급을 낮추라는 것이 아니라 성과에 따라 차별을 두라는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금융권의 '핫'아이템인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물었다.
"솔찍히 큰 기대는 없다. 첫 거래 이후부터는 거의 모든 은행 업무를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할 수 있는 시대이다. 자칫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지금은 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보다 큰 그림을 그릴 때라고 본다."
임 내정자는 함평 '나비축제' 문경 '전통찻사발축제'의 사례를 들며 "창조적 파괴로 미래 경쟁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함평에만 나비가 있겠습니까. '하늘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창조적 발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 군수의 뚝심있는 지도력, 전대미문의 높은 콘셉트를 창조해 낸 구성원들의 노력, 주민들의 응집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나를 포함해 농협맨 모두가 이 같은 창조적 발상 가질 때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다."
"1000만 영화의 숨겨진 진실은 '스토리 디자인'에 있다"는 길종철 한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의 강연 '1000만 영화 스토리텔링의 비밀' 얘기도 꺼냈다. 농협은행도 새로운 스토리를 디자인 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이경섭 내정자는 "고객 돈 잘 불려주고, 필요할 때 돈빌려주는 게 회사가 성장하는 길"이란 신념을 가진 정통 농협맨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속에서도, 실적을 중시하는 뱅커의 기질이 엿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