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속 정우(34)의 첫 등장은 해맑다. 산을 '정복'하겠다고 나선 치기어린 청춘은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든든한 대장을 만나 성숙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운명은 잔인하다. 너무 빨리 찾아온 죽음 앞에서 청춘은 눈물마저 제대로 흘리지 못한다. 그 순간 정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들에 영화의 뭉클함이 녹아있다.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인물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면 부담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정우가 처음 '히말라야'의 시나리오를 읽은 뒤 부담감을 느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2004년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불의의 사고로 숨진 박무택 대원을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야기가 탄탄했어요. 박무택이라는 캐릭터가 웃고 있으면 저도 미소가 지어졌고 슬픈 상황에 처해 있으면 저도 울고 있더라고요." 제대로 된 감정 표현을 위해 부담감을 떨쳐내는 것, 그것이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히말라야'에 동참했다.
정우는 영화 속 박무택 대원을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 에너지가 관객에게 긍정적인 힘으로 다가가길 바랐다. 영화 초반부의 박무택은 장난기 넘치는 평범한 20대 청춘으로 묘사된다. 정유미가 연기한 수영과의 티격태격 로맨스도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유쾌하게 만든다.
"시나리오에 박무택의 감정이 잘 나와 있었어요. 그 느낌을 살리려고 했고요. 후반부에 가면 박무택 대원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을 의식하면서 '이쯤부터 시동을 걸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박무택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미리 행동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수영의 이마에 입맞춤하고 떠나는 순간에도 그냥 평상시와 똑같은 느낌으로 연기했죠. 그런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가 후반부에 진정성 있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쌓인 감정은 극 후반부에서 뭉클함으로 변한다. 이토록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던 박무택이 뜻하지 않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 안타까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가슴 아픈 순간이었다. "평소보다 예민했어요. 집중력이 깨질까봐 정신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썼고요. 머릿속으로 먼저 감정을 생각하며 연기하는 건 가짜라고 봐요. 수영의 사진을 보며 '보고싶다'는 대사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온 정신을 쏟아서인지 그날의 촬영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에요."
영화 속 박무택 대원의 모습을 누구보다 기다린 사람은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에베레스트를 또 한 번 올랐던 엄홍길 대장일 것이다. VIP 시사회를 통해 완성된 영화를 본 엄홍길 대장은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정우를 꽉 안아줬다. "엄홍길 대장님은 말 수가 많지 않으세요. 그래도 저를 동생처럼 아들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죠. 손길 하나, 포옹 하나만으로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했어요." 그 따뜻한 포옹이야말로 '히말라야'라는 힘든 여정을 거친 정우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위안일 것이다.
"촬영하면서 왜 산악인 분들에 왜 이렇게 힘든 여정을 하는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건 그분들이 저에게 '왜 연기를 해요?'라고 묻는 것이니까요. 그분들이 산에 오르는 것도 제가 연기를 하는 것도 그냥 인생의 목표인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를 왜 하냐고요? 저에게 그 질문은 '왜 밥을 먹냐'는 질문과 똑같아요(웃음). 맛있어서 밥을 먹기도 하고 살기 위해서 먹기도 하잖아요. 무엇보다도 좋아서 하는 일이고요. 꿈을 쫓아서 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온 것 같아요. 그리고 진정성 있게 조금은 천천히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