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되돌아보면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떠오르기 마련이다. 2015년 문화·예술계에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가득했다. 잘 만들어진 영화, 추억을 자극하는 노래, 이색 소재의 드라마 등 다양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힘든 일상에 작은 힘과 위안이 됐다. 예술계에서도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논란과 사건사고도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2015년의 문화·예술계를 10대 뉴스로 정리했다.
◆ 피아니스트 조성진, 쇼팽 콩쿠르 우승 '쾌거'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한국 클래식 역사에 한획을 그었다. 지난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폴란드 바르샤바의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우승을 차지한 건 조성진이 최초다.
조성진의 활약은 음반과 공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유니버셜뮤직을 통해 발매된 콩쿠르 실황 '2015 쇼팽 콩쿠르 우승 앨범'은 1주일 만에 5만장이 완판됐다. 내년 2월 2일 국내에서 열리는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티켓 역시 오픈 50분 만에 2500장이 매진됐다.
◆ 조용히 세상을 떠난 천경자 화백
여인의 한(恨)과 환상, 꿈과 고독을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 한국 미술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천경자 화백이 조용히 세상을 떠나갔다. 1998년 '미인도'의 위작 논란으로 절필을 선언하고 한국을 떠난 천경자 화백은 지난 8월 6일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10월에야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
고인의 죽음과 함께 '미인도'의 위작 논란도 재점화했다.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미인도'가 위작임을 다시 주장했다. 1999년 이 작품을 위조했다고 진술한 고서화 전문위조범을 수사한 전직 검사도 공개 강연에서 "위조된 게 맞다고 본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논란에 불을 댕겼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 예술감독./서울시립교향악단
◆ 내홍 이어진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과 재계약 보류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4월 한국 오케스트라, 아시아 작곡가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BBC 뮤직 매거진상'을 받는 등 국내외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 지난해 말 불거진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의 성희롱과 막말 논란의 여진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정 감독 측의 배후에 있는 조직적 음해"라고 주장하며 반발했다. 양측 갈등은 고소전으로 이어졌고, 서울시향 직원 10여명은 박 전 대표를 강제 추행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전 대표를 무혐의 처분했다.
앞서 3월에는 일부 시민단체가 정명훈 예술감독을 항공권 부정 사용 등을 통해 업무비를 횡령했다고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서울시향 이사회는 28일 오전 정 감독에게 3년간 예술감독직을 맡기는 내용의 '예술감독 추천 및 재계약 체결(안)'을 상정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정 감독은 29일 서울시향을 떠난다고 밝혔다.
◆ 신경숙 표절 논란, 한국 문학계 권력 논쟁까지
소설가 이응준은 지난 6월 16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게재한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일본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신경숙은 논란이 거세지자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논란의 불똥은 창비·문학동네·문학과지성사 등 대형 출판사로 튀었다. 스타 작가라는 이유로 표절 시비에 휘말린 작가를 감싸려고만 하는 맹목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비판은 변화로 이어졌다. 백낙청 창비 편집인은 지난달 창비 창립 50주년에 맞춰 퇴진했다. 문학동네는 강태형 대표이사와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 7명이 물러났다.
◆'베테랑' '암살' 동시기 천만 돌파
올해 극장가에는 같은 달에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관객수 1000만명을 기록하는 진기록이 나왔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은 광복 70주년인 지난 8월 15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어 2주 뒤인 29일에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쌍천만 영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두 영화의 흥행 요인은 바로 통쾌함이었다.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린 '암살'은 역사가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친일 청산 문제를 다뤄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베테랑'은 부패한 재벌 3세를 향한 형사들의 고군분투를 통해 답답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청량감을 선사했다.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빛 좋은 개살구 된 어벤져스
상반기 극장가 최고의 화두는 외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었다. 지난해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한국에서 촬영을 진행해 온 국민의 궁금증과 관심이 컸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4월 23일 개봉한 영화는 역대 외화 흥행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최종 관객수는 1049만여 명이었다.
그러나 정작 영화에 담긴 한국의 모습은 기대에 못 미쳤다. '국가브랜드가치 2조원, 관광홍보효과 4000억원'이라던 정부와 관광공사의 선전을 무색하게 만드는 내용물이었다. 여기에 제작비의 26억원을 할리우드 제작사에 환급해준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빚 좋은 개살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토토가'가 불지핀 가요 복고 열풍
7080에 이어 90년대 가요가 새로운 복고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올해 초 방송된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요다(토토가)' 특집이 그 시발점이었다. S.E.S·지누션·터보·김건모·엄정화 등 90년대 인기 가수들이 과거의 무대를 재현해 추억을 자극했다. 당시 히트곡이 가요 차트에 재진입하는 현상도 벌어졌다.
90년대 가수들의 복귀도 이어졌다. 지누션은 11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하고 신곡 '지누션밤'으로 활동을 펼쳤다. 김현정도 4년 만에 디지털 싱글을 발표했다. 터보는 최근 김종국·김정남·마이키 3인조로 그룹을 재편성해 15년 만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 컴백 아이유, '제제' 논란으로 입방아
지난 10월 네 번째 미니앨범 '챗셔'로 컴백한 아이유는 뜻하지 않은 논란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모티브로 삼은 수록곡 '제제'가 문제가 됐다. 해당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 동녁이 가사가 소설의 주인공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했다고 지적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아이유가 소아성애자를 콘셉트로 차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판사 측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논란이 확대되자 아이유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아이유 측도 "자유로운 해석과 건강판 비판은 수용하되 근거 없는 악의적인 폄하와 인신공격성 비난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 대세는 요리·셰프…방송가 '쿡방' 전성시대
요리를 소재로 한 '쿡(cook)방'이 방송가를 점령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그 시초였다. 스타의 냉장고를 스튜디오로 가져와 그 안의 내용물들로 15분 만에 요리를 만들어내는 대결이 참신했다. 방송에 출연한 셰프 최현석·정창욱·이연복·샘킴은 이후 광고 시장까지 장악하며 '셰프테이너'로 떠올랐다.
요리연구가 백종원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tvN '집밥 백선생', SBS '3대 천왕', 올리브TV '한식대첩3' 등에 출연하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1인 가족이 늘어남에 따라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방송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는 분석이다.
◆ 다중 인격에 신분은 숨길 것…이색 소재 드라마 인기
이색 소재의 드라마가 인기였다. 상반기에는 MBC '킬미 힐미'와 SBS '하이드 지킬, 나' 등 다중인격 소재의 드라마가 안방극장을 찾았다. 특히 '킬미 힐미'는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에 힘입어 '2015 서울드라마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까지 수상했다.
여름과 가을에는 신분을 감춘 인물을 내세운 드라마가 대거 편성돼 사랑 받았다. KBS2 '복면검사', SBS'가면', '미녀의 탄생', tvN '신분을 숨겨라' 등이다. 케이블 드라마의 강세도 계속됐다. 특히 tvN은 '식샤를 합시다2' '막돼먹은 영애씨' '응답하라 1988'로 최고 시청률 두 자릿수를 기록, 인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