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KTX에 선남선녀가 같은 자리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러나 남자의 첫 마디가 분위기를 깬다. "저요, 오늘 웬만하면 그쪽과 자려고요." 따귀를 맞아도 아쉬울 것 없는 상황. 하지만 그 남자가 유연석(31)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4일 개봉한 영화 '그날의 분위기'(감독 조규장)는 KTX에서 만난 두 남녀가 '하룻밤 사랑'을 둘러싸고 벌이는 '밀당'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다. 서정적인 제목과 도발적인 소재가 만난 영화는 두 남녀의 하루를 따라가면서 사랑이 시작하는 순간의 감정을 스크린에 담았다.
유연석은 실종된 농구선수를 찾아 나선 스포츠 에이전트 재현을 연기했다. 자유로운 만남과 연애를 즐기는 재현은 우연히 만난 화장품 브랜드 마케팅팀 팀장 수정(문채원)무작정 '들이댄다.'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여자를 대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하는,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캐릭터다.
"시나리오에서 날 것 같은 신선함과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공감도 많이 됐고요. 특히 재현의 대사가 재미있었어요. 수정에게 던지는 당황스러운 대사가 영화에서는 굉장히 재미있게 그려지더라고요. 사실 시나리오가 수정되면서 처음의 날 것 같은 느낌이 반감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감독님과 제작사에 이야기해서 처음의 신선함을 이어가고 싶다고 의견을 냈어요."
실제 유연석은 재현과 다른 점이 많다. 연애에 있어서는 재현과 정반대로 좋아하는 사람을 오래 만나는 편이다. 처음에는 재현을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지금까지 맡은 캐릭터 중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라 어색함도 컸다. 하지만 자신과 성격이 다른 인물이라는 점에 배우로서 흥미가 갔다. 촬영이 거듭될수록 캐릭터와 보다 가까워지면서 평소의 편안한 모습이 재현의 능청스러움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재현의 첫 인상은 누가 봐도 '나쁜 남자'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아무렇게나 들이대는 모습이 그렇다. 그럼에도 유연석이 재현을 연기한 것은 한 가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재현의 진정성만 보여줄 수 있다면 앞부분에서 더 과장되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그 모습이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 거라고 봤고요. 관객 입장에서도 그런 제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요."
무엇보다 유연석은 많은 애정을 갖고 재현을 대했다. "재현은 거짓이 없는 캐릭터에요.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인물이죠. 아마도 과거에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은 경험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진정한 사랑을 거부하고 '자유연애'를 즐긴 거죠." 그는 "재현은 단순한 바람둥이는 아니다"라며 "수정과의 만남으로 사랑의 성장을 보는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역할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다. 재현을 향한 수정의 마음이 변하는 계기가 되는 발 마사지 장면,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재현을 향한 수정의 대사는 유연석의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 결과다.
데뷔 이후로 유연석은 늘 배우로서의 변화를 추구했다. 영화와 드라마를 자유롭게 오가며 로맨틱한 훈남과 악랄한 캐릭터 등 다양한 인물로 연기의 폭을 넓혀 왔다. '그날의 분위기' 또한 새로운 캐릭터라는 점에서 그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벽을 뚫는 남자'로 생애 첫 뮤지컬 무대에 섰다. '배우로서 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동경을 마침내 이룬 순간이었다. "영화 촬영장과는 또 다른 에너지를 받았어요. 반복적으로 연기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시도를 해볼 수 있었죠. 연기적으로 많은 훈련이 됐어요." '그날의 분위기'로 2016년 관객과 다시 만난 유연석은 올해 또 다른 영화인 '해어화'로 돌아올 예정이다. 변화와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던 유연석의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