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연기하는 것은 어렵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꾸밈없이 표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법이다. 이성민(47)의 연기에는 '평범함의 미학'이 있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배우 이성민의 힘이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에서 이성민은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아빠 해관을 연기한다. 영화는 해관이 세상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를 만나 실종된 딸의 단서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SF적인 상상력이 눈에 띈다. 이성민은 걱정보다 호기심은 느꼈다. 물론 영화를 선택한 결정적인 계기는 시나리오가 담고 있는 이야기였다. 로봇이 등장하고 국정원과 미국항공우주국 등이 얽히는 복잡한 스토리지만 그 속에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지극히 가족적인 이야기가 있다. 영화의 배경이 대구라는 점도 이성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대구는 그가 연기 인생을 시작한 제2의 고향이다.
촬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로봇과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러했다. "해관이 소리와 어색하게 만난다는 설정이라서 큰 문제는 없었어요. 그리고 소리의 움직임에서 묘한 앙상블이 생길 것 같았어요. 촬영현장에 소리의 감정을 담당하는 연기자가 따로 있었어요. 같이 감정의 합을 맞춰갔죠." 그렇게 연기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로봇과 진짜로 교감하는 묘한 경험도 했다. "연기할 때 소리의 왼쪽 눈을 주로 봤어요. 그러다 보면 이 친구가 연기를 해요. 천문대에서 '나는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소리가 말할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는 정말 진짜처럼 들리더라고요. 그 순간만큼은 교감한 거죠."
하지만 이성민이 로봇과의 연기에만 온 신경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 영화의 주제인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다. 딸을 찾는 아버지의 마음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는 순간이 많았다. "처음 딸의 친구를 만나서 딸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부터 이미 감정이 터져 눈물이 나왔어요. 하지만 감독님은 '아직 감정이 터지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는 "아무래도 연기할 때는 예민해지기에 가끔 감정에 빠져 '오버'하기도 한다"며 "그럴 때는 감독을 믿고 일단 질러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했다. 이호재 감독이 추구하는 영화의 감정과 정서에 충분히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성민은 "작품마다 한 인물을 특별한 캐릭터로 표현하기보다 최대한 일반화해서 연기하려고 한다"고 자신의 연기 철학을 설명했다. 그 밑바탕에서는 삶에서 얻은 경험이 깔려 있다. "살면서 겉모습만 보고 사람의 직업을 짐작하기 힘들더라고요. 얼마 전 다른 작품 때문에 법원의 부장판사님을 만났는데 그냥 평범한 아저씨더군요(웃음). 어릴 때는 저만이 할 수 있는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기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인물을 일반화시켜 연기하는 것이 제 연기의 '기본'이 된 것 같아요." '로봇, 소리'의 감동 또한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공감가게 표현해낸 이성민의 '평범한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는 이성민에게 첫 원톱 주연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주연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소탈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연기를 대하는 태도는 변함없다. 늘 그래온 것처럼 좋은 작품으로 대중과 만나는 것이다.
"배우는 누구나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을 거예요. 저에게는 드라마 '골드타임'이 그랬어요. 순식간에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삶을 잘 컨트롤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대중에게는 배우를 사랑할 권리도 있지만 잊을 권리도 있으니까요. '왜 나를 몰라주지?'라고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웃음). 그래서 좋은 작품, 좋은 연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