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0년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을 앞둔 국내 보험업계가 대책 마련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금융당국이 나섰다. 각 보험사가 2020년까지 2단계 기준서를 도입하지 못할 경우 우리나라는 IFRS 전면 도입국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국제 신인도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1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각 보험사에 오는 3월 말까지 이사회 결의를 거친 종합대응계획을 마련해 당국에 보고하라는 행정지도 공문을 보냈다. 해당 공문에는 각 보험사의 IFRS4 2단계 도입에 대비한 시스템 개선방안 및 경영전략 전반 개편 계획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외국 본사와 협의 등으로 제출 시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 일단 기본 계획만 제시한 뒤 오는 6월 말까지 최종 종합계획을 세워 제출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각 보험사가 제출한 대응계획을 검토한 뒤 수정 또는 보완 사항을 요청하거나 개별사의 준비상황을 점검하는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별로 IFRS4 도입 준비 상황을 서면 평가한 결과 전반적으로 미흡했다"며 "특히 시스템 구축이나 경영전략 개편을 위한 종합대응계획 조차 마련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일부 대형 보험사의 경우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영향 평가와 대응 방안 마련에 일찍이 착수한 곳이 있는 반면, 중소 보험사들은 새로운 체재에 대응할 전문인력조차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IFRS4는 총 43개 국제회계 기준서 가운데 보험계약에 적용되는 기준으로, 국내 보험사의 재무회계 근간을 흔드는 제도이다. 지난 2011년 IFRS가 국내에 전면 도입되면서 각 보험사도 새 회계기준을 적용받았지만 보험계약 부문에서는 도입시기를 1~2단계로 나누어 한동안 기존 회계관행을 유예할 수 있었다.
IFRS4 2단계 기준서는 보험부채 평가 방식을 원가에서 시가 평가로 전환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수익을 회계상 인식하는 시점도 현재처럼 보험기간 초기에 몰아서 하는 방식이 아닌 보험기간 전체에 걸쳐 나누어 인식하는 방식이다.
정도진 중앙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금감원과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IFRS4 2단계 도입 컨퍼런스에서 "(2단계 도입 후) 생보사의 보험 부채가 2014년 기준으로 약 42조원 증가해 자본이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특히 과거 고금리 시절 금리확정형 장기상품을 많이 판매한 생보사들은 시가 평가가 적용될 경우 저금리 기조에 따른 역마진 심화로 회사 경영에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손보사는 금리 확정형 상품 비중이 7.6%로 낮은 반면, 생보사는 해당 비중이 44.3%로 높다. 생보사 보험료 적립금 중 확정금리 연 7% 이상을 적용해야 하는 규모는 92조4000억원에 달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새 회계기준 아래에서는 일단 '팔고보자'는 식의 기존 판매 관행이 불리해지기 때문에 경영 전략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보험업계에선 2단계 기준서가 보험사의 재무 상태에 워낙 큰 영향을 끼쳐 결국 시행이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2단계 도입에 따른 재무제표상 변화가 크다 보니 시행 시기가 다가오면 결국 도입을 늦추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에 금감원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IFRS4 2단계 도입을 미룰 수 없는 상태"라고 못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