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정부가 발표한 주류 시장에 대한 '2015 가공식품 세분시장 현황'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지난 5년 간 일본으로부터 매년 평균 180여억원어치, 물량으로는 4000톤에 이르는 청주를 수입했다. 이는 우리 국민이 매년 평균 8000톤에 이르는 일본쌀을 소비해주는 것과 같다.
청주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쌀과 물의 비율을 1:1이라고 계산했을 때, 4000톤의 술이 나오려면 4000톤의 쌀이 사용된다. 그렇지만 일본은 우리와는 달리 술 만드는 쌀을 밥 해먹는 쌀 보다 30~70% 깎아 쓰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4000톤의 일본 청주를 만드는 데는 약 8000톤의 일본쌀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본 본격소주(本格?酎)를 증류할 때 들어가는 발효주의 양을 감안하면 이보다 3~4배 많은 쌀이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는 이달 초 오래 묵은 쌀(2012년산) 약 9만9000톤(현미 기준)을 사료용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말에는 3만 ㏊(약 9000만 평)의 벼 재배면적을 감축해 쌀 수급 안정을 꾀하겠다고 밝혔다. 3만㏊는 지름이 약 20㎞ 킬로미터인 원과 비슷한 어마어마한 규모로, 서울 면적(605.5㎢)의 절반에 해당하는 넓이다. 지난해처럼 작황이 좋을 경우 우리 논 1마지기(200평)에서는 1년 평균 약 500kg의 쌀이 생산된다. 다시 말해 8000톤의 쌀은 우리 논 320만 평에서 생산할 수 있는 양인 것이다.
누대에 걸쳐 공들여 지켜온 논을 없애버리는 것도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만, 쌀을 사료로 쓰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적 저항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식량자급률 하락에 대한 깊은 우려를 해소할 만한 딱 부러진 방안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고육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으니 그만큼 쌀 수급이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일본에서도 1931년 경 쌀 공급이 넘치게 되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남는 쌀로 '숯을 만들자' 또는 '바다에 버리자'는 등 기상천외의 방안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일본 정부는 논을 없애지 않고 농림성에 미곡이용연구소를 신설해 쌀을 식량 이외에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이때 일본은 주정에 물을 타고 첨가물로 맛을 낸 술이 아니라, 정말 국주(國酒)로 대접받을 만한 제대로 된 술이 나오도록 애썼다. 이 연구소는 후에 농림성 산하 식량연구소로 간판을 바꾸었고, 거꾸로 쌀이 부족한 시대가 오자 또 다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전체 논 면적의 15% 가량이 술을 만들기 위한 벼를 재배하는 곳이다.
커피처럼 술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기호식품이어서 뭐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본 사케를 대체할만한 술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어서, 지금처럼 어려운 때는 잠시 참을만한 것도 사실이다. 정부 역시 쌀 수급대책을 세우는 데 극단적인 단기처방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논을 없애는 것은 손발이 동상에 걸리고 혈관이 막혔다고 해서 잘라버리는 일과 같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동상에 걸린 손발을 정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일상에서 작은 실천으로 힘을 보태고, 정부가 나라의 위태로움을 이겨내겠다는 절실함으로 정책을 세워, 모두가 흔연한 마음으로 어려운 경제파고를 극복해 나가보자. /이화선 사단법인우리술문화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