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 '대체불가 악역' 남궁민 "이정도면 잘하지 않았나요?"
'리멤버' 스스로 칭찬한 첫 작품
남규만은 배우인생의 터닝포인트
공감가는 역할로 시청자 만나고파
영화 '베테랑'에 조태오가 있었다면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리멤버)'에는 남규만이 있었다. 대체불가 악역으로 떠오른 배우 남궁민(37)을 강남에 있는 사옥에서 만났다. 서글서글 웃으며 등장한 남궁민은 드라마 속 남규만과 정반대의 성품을 지닌 배우였다.
'리멤버' 속 남규만은 잘나가는 일호 그룹의 후계자로 자신의 실리를 위해서라면 누가 됐든 가차없이 밟아버리는 인물이다. 사소한 일로 흥분하고, 흥분했을 때는 자기 통제가 안되는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다.
"촬영 내내 남규만을 연기하느라 솔직히 힘들었어요. 대사 하나를 쳐도 시청자에게 '쟤는 손톱만큼도 남을 존중하지 않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제 실제 성격이 남규만처럼 화를 표출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초반 3주 정도는 캐릭터와 마찰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중후반기에 들어서면서 편하게 연기했고, 몰입도 더 잘되더라고요.(웃음) 제일 힘들었던 점이요? 아침부터 선배들한테 반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다고 미안함도 느끼면 안된다는 것이 힘들었죠."
폭언, 폭력은 물론, 살인도 서슴지 않는 남규만의 뒷처리는 늘 친구이자 비서 안수범(이시언)의 몫이었다. 갖은 구박을 받으면서도 묵묵히 남규만을 떠받들었다.
"촬영하면서 이시언 씨한테 분풀이 많이 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시언이와 정말 사이가 좋고, '쿵짝'이 잘맞았다고 해야할까요? 둘이서 대사 연구도 많이 했어요. 애드리브로 완성된 장면도 있었고요. 만약 그 친구가 받쳐주지 않았다면 남규만 캐릭터는 꽃 피울 수 없었을 거예요."
전작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는 미소 뒤에 섬뜩함을 숨긴 연쇄살인마 권재희를 연기해 호평받았다. 연속으로 악역을 맡아 이미지가 굳어지지는 않을까걱정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내성적이면서 악행을 저지르는 권재희와 시한폭탄같은 남규만은 달라도 너무 다른 극과 극 악역이었다"며 "남규만을 거치고, 착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과 거치지 않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을 거다. 이번 작품은 배우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리멤버' 이후 낭궁민은 대중에게 제대로 각인됐다. 악역을 두 작품 연속으로 해서 그런지 일각에서는 남궁민 원래 본모습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주변에서 무섭다는 말 정말 많이 들어요. 그런데 그만큼 그 캐릭터를 사랑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반응들까지 좋은걸요? 다음 번 작품에서의 목표도 생겼어요. 백명 중에 백명 전부는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따뜻한 역할을 해서 사랑받아보자라는 거예요. 그동안 여러 작품을 해오면서 스스로 만족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 작품 끝나고 처음으로 '이정도면 나 잘하지 않았나?'라고 반문하게 되더라고요. 칭찬받고 싶은 연기였어요."
남궁민은 "이번 드라마를 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연기 잘한다. 의외네?'라는 반응이었다"라며 "갑자기 연기력이 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그동안 작품은 꾸준히 해왔고, '리멤버'가 유독 사랑을 많이 받고 많은 시청자가 좋아하셔서 그렇게 느끼시는 것"이라고 소신을 드러냈다.
'리멤버'는 남규만의 자살로 끝이 났다.
"딱 남규만스럽고, 적정선을 찾은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시청자들이 원하는 '사이다(꽉 막힌 것을 뚫어주는 통쾌함이 있는)' 결말은 아니었겠지만요. (웃음) 결말에 대해 성웅이 형이 제일 아쉬워했어요. 감독님한테 '딱 한대만 때리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하더라고요. 사실 드라마 시작할 때 회개, 반성 안하게 해달라고 감독님께 약속받았어요. 끝까지 치졸한 악역으로 남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16년차 배우 남궁민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2011년 MBC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 이후 2년동안 쉰 것이 발단이었다.
"아무리 많은 사랑을 받았더라도 한두달이면 금방 잊혀지더라고요. 남규만도 곧 잊혀지겠죠? 그때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못했고, 인기가 지속될 줄 알았나봐요. 그때를 계기로 항상 게으르지 않고, 겸손하게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남궁민은 연기할 때 목적을 두지 않는다. 특정한 결과물을 내려고 하면 더 안된다는 것이 이유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기하자 본연의 즐거움을 더 많이 알아가게 됐다고.
"많은 분이 초반에 '저렇게 선하게 생긴 배우가 어떻게 악역을 하겠어?'라고 했는데 잘 해낸 것 같아요. 착한 키다리 아저씨 캐릭터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역할을 해본 게 저에게는 자양분이 될 거고, 자부심도 갖고 있어요. 다음 번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에 출연해서 실생활에 있을 법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지고지순한 키다리아저씨도, 살인마, 분노조절장애자는 솔직히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남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걸 하고 싶다는 게 개인적인 욕심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