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원 A씨(33)는 최근 주말에 운동을 하던 중 허리를 삐끗했다. 20여일 간 병원에 입원한 A씨의 진료비용은 총 800여만원. 이 가운데 비급여 의료비로 720만원이 지급됐다. 병원은 A씨가 처음 방문했을 때 실손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곤 통원이 아닌 입원 치료를 권했다. A씨가 가입한 실손보험의 경우 통원 치료는 하루 최대 20여만원의 한도로 보험금이 지불되지만 입원시에는 5000만원까지 보장되기 때문. 병원에 입원한 A씨는 물리 치료와 함께 굳이 도수 치료(의사가 직접 손으로 행하는 치료방법)까지 병행했다. A씨는 "'눈먼돈'에 입원을 결심, 나 역시 보험사기범과 다를 것 없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낸 보험금은 돌려받자는 생각에 꿋꿋이 병실을 지켰다"고 털어놨다.
A씨와 같은 허위입원·과다 의료비 청구는 보험사기의 일종이다. A씨가 받은 도수치료는 법정 비급여 항목에 해당, 병원이 가격과 시행횟수 등을 임의로 정할 수 있어 통상 의료진·브로커·환자가 합심해 보험사기를 일으키는 데 사용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심사기관의 심사도 받지 않아 보험사는 병원이 제출한 진료기록 그대로 보험료를 청구할 수밖에 없다.
22일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적발된 보험사기금액이 총 6549억원으로 전년 대비 552억원(9.2%)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허위입원·허위진단·사고내용 조작 등을 모두 포함한 허위·과다 사고 사기 적발금액은 4963억400만원에 달해 전체의 75.8%를 차지했다. 또한 이중 A씨와 같은 허위입원으로 빠져나간 보험금은 996억9900만원에 달했다.
◆'나 하나쯤이야'…안일한 생각에 보험사기 가담
'나도 모르게' 보험사기범으로 전락하는 일이 심심찮다. 보험사기임을 자각하고도 '나 하나쯤이야' 혹은 '남들도 다 이렇게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사기행각에 가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잇단 보험료 인상에 자신이 낸 만큼 보험금을 돌려받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 3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정 이후 보험사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일각에서 '사소한' 사기행각을 통해 보험금을 타내는 경우가 적발되고 있다"며 "문제는 이로 인해 보험사 손해율이 상승하고 이를 만회하려고 보험사들이 또 보험료 인상을 계획, 결국 소비자에게 보험료 인상 부담이 전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2014년 평균 1.44% 상승에 불과하던 실손보험료 인상률은 지난해 평균 14.17%까지 올랐고, 올 들어선 최대 27%까지 보험료가 인상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자동차보험과 실손보험료의 인상에 이어 다음달 보장성보험까지 보험료 인상이 예고되면서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해오던 고객 역시 '본전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과다한 보험금 청구를 요구해오곤 한다"며 "결국 보험금 과다 청구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 "건강보험 비급여부터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이 처럼 보험사의 손해율 악화-보험료 인상-고객의 과다 보험금 청구 등 악순환의 시발점으로 당국의 건강보험 비급여에 대한 관리 체계 미흡을 꼽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건강보험 비급여 관리에 있어 미흡한 모습을 보이면서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이 급격히 증가해 보험사 손해율이 갈수록 악화일로다"고 진단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건강보험 비급여 의료비는 연간 약 23조3000억원 수준이다. 이중 실손 비급여 보험금은 지난 2013년 기준 2조8787억원. 전체 실손지급 보험금 4조2000억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8% 규모다. 이렇게 비급여 의료비로 지급하는 실손보험금은 매년 증가, 2011년 109.9%에 이르던 보험사 손해율은 2012년 112.3%, 2013년 119.4%, 2014년 122.9%, 2015년 상반기 124.2%까지 악화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가 실손보험료를 통해 보험료 100을 거둔 뒤 거의 12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고객에게 보험료로 지급하고 있다"며 "분명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보험사기' 연루는 한순간…
이수창 생명보험협회 회장은 이와 같은 지적에 당장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를 막기 위한 건강보험 비급여 제도 개선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회장은 지난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비급여의 경우 진료 항목과 진료비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이를 이용한 의료기관의 과잉 진료 행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비정상적인 실손보험금 청구로 이어져 보험사의 실손보험 적자를 키운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실손보험 비급여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건복지부, 금융위 등 정책당국 차원의 검토를 통해 비급여 항목 표준화가 시급하다"며 "이해 당사자가 많으므로 민관 공동 실손보험정책협의체 구성이나 실손보험의 전문기관 심사위탁 등 제도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감독원은 선량한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들이 일부 의료진과 보험사기 브로커의 유혹에 현혹돼 보험범죄에 가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문제의사 등이 실손의료보험 보장대상이 아닌 건강·미용목적 등의 치료비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허위의 진료비영수증 등을 발급해 일반인의 보험사기를 유도하고 있다"며 "보험가입자들이 순간적인 욕심으로 범법자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