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 아무도 민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국민은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투표로 정치권의 일방적인 독주를 심판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여당의 막장 공천' '호남의 더민주 심판' '친노에 대한 반감' 등 정치공학적인 해석만 내놓고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다.
정년퇴직을 앞둔 중장년층은 100세 시대를 힘들게 살아가야 할 미래가 걱정스럽다. 청년층은 학자금 빚도 갚지 못한 채 부모에게 얹혀 사는 파트타임 근로자로 사회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 경제활동이 왕성한 3040 세대는 미래가 불투명해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회양극화 현상은 심해지고, 일부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갑질'에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사회가 이렇게 되도록 민생을 팽개친 정치권에 대한 '무언의 경고'인 셈이다. 메트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이번 총선결과에 대한 민심을 총 4회에 걸쳐 들어본다. <편집자 주>
[b]"그래도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는데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기분을 국회의원들이 알까요?비록 작은 한표지만 제 의지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2호선 신도림역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A씨)
"100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30년 이상을 뭘 해서 먹고 살지 걱정이에요. 자식들한테 손벌리기도 그렇고, 이렇게 산에 다니는 것도 하루이틀이고…."(3호선 경복궁역에서 만난 60대 은퇴자 B씨)[/b]
취업난에 허덕이는 2030, 조기퇴직에 내몰린 4050, 준비 없이 노후를 맞이하는 60대….
경제실정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은 냉철했다. 뾰족한 해법 없이 경제 위기가 계속 되면서 민심이 정부여당에 회초리를 든 것이다. 결과는 매서웠다. 야당이 집권 여당일 때에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새누리당을 믿고 신뢰를 보여준 국민들이었기에 더욱 뼈아픈 결과였다. 국민은 16년 만에 야권에게 기회를 넘겨줬다. 경제 위기 탈출이 여야 모두의 과제가 된 셈이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민주는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 국민의당은 야권 텃밭인 호남에서 각각 승리를 거머쥐며 16대(2000~2004년)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을 이뤄냈다. 이는 이명박~박근혜정권으로 이어지는 보수정권 8년에 대한 심판이자 새로운 정치변혁의 태동을 바라는 민심이 표출된 결과로 보인다.
보수정부 집권 기간 연평균 실질성장률(물가 변동을 반영한 실질적인 국민 소득)은 3.1%에 그쳤다. 지난해엔 실질성장률이 2.6%에 그치면서 2014년(3.3%)보다도 하락했다.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 이후 세계 경제성장률을 5년 연속 밑돈 것은 처음이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을 넘어 장기침체 국면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경제부진은 청년 취업난과 고용 불안정, 자영업 위기, 고령층 빈곤화 등 실질적인 삶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민심은 보수정권의 '성장을 통한 경제성장'보다 진보정권의 '분배를 통한 경제성장'으로 눈을 돌렸다. 신(新)성장동력을 잃은 한국 경제의 틀을 바꿔야한다는 민심의 요구와 새 정치의 태동을 바라는 여론이 반영된 결과다.
보수 지지층이었던 5060이상 세대도 더 이상 지지를 보내지 않았다. 이미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5060세대는 적극적으로 투표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반면, 총선에 처음 적용된 사전투표는 정치에 무관심하던 청년층의 발길을 투표장으로 이끌었다.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12.19%) 기록으로 2040세대의 상대적으로 높은 투표율이 여소야대 구도에 한몫한 셈이다. 야당 분열에도 불구하고 범야권 지지층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을 대안정당으로 선택, 경제와 정치 변화를 촉구한 것이다.
새누리당이 원내 과박 의석을 내준 것은 물론 '원내 제1당'의 지위마저 빼앗긴 것은 경제 심판은 물론 소통을 외면한 '마이웨이'식 국정 운영과 '공천 파동'으로 상징된 여당의 오만에 여당 지지층마저도 싸늘히 고개를 돌리도록 자초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여당인 새누리당인 제1당 지위를 내주면서 의회권력도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간 정부와 여당이 발맞춰 추진하던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입법 등에 차질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새누리당의 참패로 제1당 지위마저 내주면서 의회권력도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간 정부와 여당이 발맞춰 추진하던 노동개혁과 경제활성화 입법 등에 차질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민의는 이번 총선에서 균형을 선택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입법 기관인 국회가 소통과 화합을 통해 분열을 조화로, 갈등을 유대로 대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총선 개표가 이뤄지던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 마련된 20대 총선 개표상황실에서 "새누리당 정권의 경제 실책에 대해 국민이 심판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는 서울 노원구 선거사무실에서 "보다 더 좋은 정치로 보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중앙선거대책위 해단식에서 "국민께서 매서운 회초리로 심판해 주셨고, 저희는 참패했다"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다시는 국민을 실망하게 하지 말라는 지엄한 명령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