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전두환 정권이 1985년 당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에 '호헌'(護憲, 5공 헌법 수호) 공개 지지 표명을 요구했다 거절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한국은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신민당 돌풍을 계기로 대통령 간선제와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5공화국 헌법을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하자는 사회적 목소리가 거세진 상황이었다.
외교부는 17일 이 같은 내용 등이 담긴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분량만 총 1602권에 25만여 쪽에 달한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전두환 대통령 미국 방문', '김대중 귀국' 등 1985년에 생산된 문서를 중심으로 하며 1980년과 그 이전의 외교문서 가운데 일부도 재심의를 통해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4월 24∼29일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 후 언론 발표 과정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호헌에 대한 공개 지지 표명을 해줄 것을 미국 측에 집요하게 요청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 25일 저녁 미국 현지에서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동에 배석한 폴 월포위츠 국무부 당시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 내에서 헌법 개정 문제가 정치 문제화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이 이 문제를 언급하면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맞서면서 결국 불발됐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결국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같은 해 6월 29일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6·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이와 함께 미국이 5·18 민주화 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또 1982년 망명길에 올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5년 2월 총선 직전 귀국을 선언하자 한미 정부가 귀국 연기를 종용하기 위해 긴밀히 협의한 상황도 드러났다.
이밖에 문서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4년 당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에 대한 시정 요구를 '북한이 한일간 이간을 노리고 배후 조종한 데 따른 행위'로 규정하고, 국내 언론의 관련 보도를 통제하려 했다는 사실도 담겼다. 아울러 전 전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은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외교부는 국민 알 권리와 학술연구 등을 위해 보존기한이 지난 외교문서를 심사를 통해 공개해왔으며 1994년 이래 30년이 지난 외교문서 중 2만여권, 270만여쪽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