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20대 총선 이후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새누리당은 총선 직전까지만해도 법안의 직권상정 요건을 엄격히 한 국회법을 19대 식물국회 주범으로 지목하고 법개정을 강력 추진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집권여당이 선진화법 개정을 통해 의회 독재를 강화하려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왔다.
하지만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에 실패하고 국회가 '여소야대'로 재편, 원내 제1당이 바뀌자 이번에는 더민주가 선진화법의 개정 필요성을 먼저 들고 나왔다. 여야가 의석수 등 국회 내 지위에 따라 선진화법의 개정 여부를 다른 관점에서 적용한 셈이다.
◆여야, 입장바꿔…"개정글쎄vs개정필요"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21일부터 내달 20일까지 열리는 4월 임시국회에서 선진화법 개정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정의화 국회의장의 주재로 회동을 갖고 4월 임시국회에서 정 의장이 제안한 선진화법 수정안을 적극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의장의 수정안은 신속처리제도(패스트트랙) 소요기간을 현행 330일에서 75일로 단축하고, 지정 요건을 재적의원 300명 중 180명 찬성에서 과반 요구로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새누리당은 정 의장의 이 같은 안에 적극 찬성하며 개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 과반 확보에 실패한 새누리당은 임시국회에서 민생 법안을 먼저 처리하겠다는 것으로 태도를 바꿨다. 더민주는 개정 필요성 주장이 당론이 아니라고 경계하면서도 여야 합의 불발 시 예산안 자동 처리 규정에 대해서는 개정 의지가 강한 상태다. 총선 전부터 다당제가 되면 선진화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혀온 국민의당도 개정에 적극적인 분위기다.
다만 국민들은 선진화법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전국 19세 이상 국민들을 대상으로 선진화법 개정 여부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 이날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국회법을 '지금처럼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은 41.1%로, '개정해야한다'는 의견 35.9%보다 오차범위(±4.3%p) 내인 5.2%p 우세한 것으로 조사됐다.
◆날치기국회냐, 식물국회냐…국회법 딜레마
당초 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전횡, 즉 법안날치기를 막기 위해 2012년 5월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했다. 쟁점 법안에 대한 여당의 일방 처리가 계속 되고 야당의 거센 반발로 몸싸움이 격화되자 여야 합의로 개정안을 마련한 것이다. 신속처리 지정 요건을 재적 의원 3분의 2로 정한 것도 보다 많은 의원들과 소통해 찬성을 이끌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선진화법이 없던 18대 국회에선 153석(전체 299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4대강 관련 법안을 비롯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금산분리완화법 등 쟁점 법안들을 일방 처리했다. 선진화법은 이 같은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제정된 것이다.
하지만 선진화법이 제정된 19대 국회에선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법안들이 번번이 이 법에 막혔다. 새누리당이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법안이 무더기로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19대가 식물국회 오명을 받은 것도 여당이 법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안의 신속처리 요건을 과반으로 완화하면 날치기 국회가 우려되고 현행대로 3분의 2를 유지하면 식물국회가 발목을 잡게되는 셈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선진화법은 또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당이 없는만큼 요건을 150명(과반)으로 하든 180명이상으로 하든 여야3당 모두 다른 당과 협조 없이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게 된 것이다.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가 된 까닭이다.
문제는 선진화법 개정에도 180명 이상 요건을 채워야 한다는 점이다. 20대 총선 결과를 기준으로 새누리당(122석), 더민주(123석), 국민의당(38석) 중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합의하지 않는 한 법안 개정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