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초저금리 지속에도 기업들의 자금 상황은 녹록치 않다. 경기 불황으로 기업 부실 위험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초우량 회사채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작 자금 수혈이 필요한 기업들이 하릴없이 속만 끓이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A등급 회사채 시장 냉기…기업, 자금줄 마른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AA-등급과 A+등급 간 회사채의 신용 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 차이)는 55bp(1bp=0.01%포인트)를 기록했다.
지난 2014년 4월 3월 이후 40bp에서 유지되다 최근 확대됐다.
웅진그룹, STX그룹, 동양그룹 등 굵직굵직한 크레딧 이벤트가 있던 때를 제외하면 드문일이다.
신용 스프레드 확대는 채권 시장 투자자들이 국고채보다 수익률이 높지만, 상대적 위험도가 높은 회사채를 기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채권 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의 사태로 한계 상황에 부닥친 기업 전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회사채 시장의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A등급 잔액의 산업별 구성은 석유화학 20%, 조선 13%, 건설 12% 등으로 한계업종 비중이 높은 편이다. 반면 AA등급 이상 잔액의 산업별 구성은 금융(금융지주 포함) 21%, 유틸리티 20%, 통신 10% 등으로 구성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A등급 기업들은 돈줄이 말라간다.
3월 A등급 회사채 발행액은 1500억원(전체 비중 9.4%)으로 급감했다. A등급 일반 회사채는 2월 7380억원(26.9%)어치가 발행돼 작년 말부터 나타난 회사채 양극화 현상이 다소 완화되는 듯 했다.
반면 3월 일반 회사채 발행액(무보증 회사채 기준) 가운데 86.7%인 1조3900억원어치가 우량 등급인 AA 이상 채권이었다.
◆자금조달 '빈익빈 부익부'확대되나
크레딧 시장 관계자들은 "기업들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약화되면서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채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신용등급 하락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올해 들어 4월 현재 AA-등급 이상 회사채의 신용등급 상향 건수는 5건이었다. 하락건수는 3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94%에 달했던 하락비중은 38%로 낮아졌다.
반면 A등급은 하락이 9건이나 됐다. 상승은 단 3건이었다. 이에 하락비중이 75%나 됐다.
신용 강등 우려까지 커진 기업들의 고민은 더 크다. '신용등급 하락→자금조달 금리 상승→투자 어려움→실적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차환발행이 쉽지 않아 자산유동화 등 대체조달 수단을 모색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면서 "상황이 더 나빠지면 급전이라도 빌려써야 할 형편이다"고 설명했다.
한국기업평가가 분석한 올해 산업별 등급전망을 보면 '긍정적'인 업종은 한 곳도 없고, '안정적'인 업종은 항공, 음식료 등 21개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호텔, 해운, 조선, 건설, 발전 등은 등급전망이 '부정적'이어서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업환경 측면에서 '우호적'인 업종으로는 항공이 유일했고 음식료 등 15개 업종의 사업환경은 '중립적'으로 평가됐다.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나머지 10개 업종은 '비우호적'으로 평가됐다. 특히 이 가운데 해운, 조선, 건설, 발전 등 4개 업종은 등급전망도 '부정적'이어서 올해 어려운 한 해가 될 수 있다고 한기평은 예상했다.
■용어
회사채 스프레드=특정등급 회사채의 수익률에서 3년만기 국고채의 수익률을 뺀 수치를 말한다. 스프레드가 높을 수록 기업들이 자금을 융통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