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이 태풍의 눈이 됐다.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서도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좀비 기업' 정리작업을 더는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좀비 기업 정리로 기업 투자와 고용을 끌어내 산업계 전반에 걸쳐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상선, 한진해운 등은 '대마불사'의 논리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해운, 건설, 조선, 철강, 석유 화학 등 한계업종의 재무리스크를 점검해 본다.
컨테이너 해운 시장 공급 수요 갭자료=알파라이너, HMC투자증권
역사상 가장 힘겨운 때를 보내고 있는 국내 해운사들의 화두는 '살아남기'다. 지난해 말 가까스로 살아 남았던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 마저 법정관리 위기에 내물리면서 국내 해운사들이 역대 최악의 경영난에 빠져들었다. 거친 파도(해운경기) 속에서 근근이 버텨왔지만, 방향타에만 의지하기에는 한계에 달했다는 분석이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한 "이봐, 해봤어"란 문구를 되새기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절실해 보인다.
◆가중된 경영난, 자금조달 길도 막막
"어려운 여건이지만 올해 사업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 재무 안정성을 강화하자.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도록 회사의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석태수 한진해운 사장이 신년사를 통해 한 말이다. 그는 "늘 하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법으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백훈 현대상선 대표는 "나도 지금 해운산업이 어려운 이유를 써보라고 하면 아마도 100가지는 쓸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우리이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또 화성에 홀로 낙오돼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며 지구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영화 '마션'의 대사 중 '포기해 버리고 죽을 것이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는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어려운 해운업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 5조7665억원, 영업손실 2535억원의 실적을 냈다. 한진해운은 지난해 영업이익 369억원을 달성하고 흑자전환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자체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 회사는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빌린 3조원도 갚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발행한 공모채와 회사채 신속인수제 차환 발행액은 각각 1조5040억 원과 1조2500억원 규모다. 두 회사는 사모채를 통해서도 대규모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현대상선은 1500억원 상당의 영구채와 해외사채를, 한진해운은 1960억원의 교환사채와 2250만달러의 해외변동금리부 사채를 각각 팔았다.
덕분에 신용등급은 땅에 떨어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한진해운의 신용등급을 BB에서 투기 수준인 B-로 하향하고 하향검토 등급감시 대상에 올렸다. 한국기업평가도 한진해운 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강등하고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한기평 서강민 책임연구원은 "한진해운은 6월 만기도래하는 무보증사채 1900억원에 대해 유동성 대응 수단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자율협약 신청으로 한진해운의 유동성 위험이 보다 심화된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상선의 회사채 신용등급이 최하위 등급인 D등급까지 떨어졌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SK해운의 올해 회사채 만기 규모도 3103억원에 달한다.
SK해운의 지난해 부채비율은 562.50%가량이다. 2014년 704.77% 에 비하면 건전성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원가 경쟁력 확보 쉽지 않아
업황도 아직은 잿빛이다.
알파라이너(Alphaliner)에 따르면 2015~2017년 컨테이너 물동량 성장률은 평균 2%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수요갭(Supply-demand gap)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에 도태된 해운사들은 향후 원가경쟁력 면에서 뒤쳐질 가능성 크다.
키움증권 조병희 연구원은 "국제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운임이 더 크게 하락하며 수익성 개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5월부터 계절적인 성수기로 진입하겠지만 스팟 운임의 계속되는 약세는 장기 운송 계약 체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4대 얼라이언스 체제가 하반기 이후에는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해운사는 대형 선박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얼라이언스 재편의 주도권을 잡기 어려워 보인다"면서 "따라서 국내 대형 컨테이너 선사는 재무 관련 우려를 빠르게 해소한 후 신조발주까지 이어져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빠른 펀더멘탈 개선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의 경기 둔화도 걱정이다.
한국기업평가 김현 연구원은 "중국의 수출입 물동량 감소는 선복량 과잉을 심화시켜 운임 약세 시황을 보다 장기화할 수 있다"면서 "이에 따른 글로벌 상선 발주량 감소는 조선산업에도 차례로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