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준 적용 시 한국 제조업의 과잉 공급 업종 현황자료=산업연구원, 신한금융투자
정부의 구조조정 칼 끝이 대기업을 향하고 있다. 대부분 조선과 해운, 건설 등 이른마 '문제업종' 내 기업이다.
그럼에도 이날 주가는 오름세를 보였다. 지난 98년 6월 55개 퇴출기업발표를 앞두고 요동을 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부실기업 솎아내기가 악재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 본연의 정화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히려 칼 끝이 무뎌질 경우 악재가 될 수있다는 지적이 적잖다.
◆시장 정화작용 효과, 증시에 호재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 방향은 해당기업과 산업의 상황에 따른 3가지 트랙(track)이다. 제1트랙은 조선·해운 등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제2트랙은 상시적 구조조정, 제3트랙은 공급과잉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등이다. 이를 위해 금융당국과 채권은행들은 기업평가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기업 퇴출작업이 주식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26일 신한금융투자에 따르면 코스피 상장사 중 워크아웃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17.6% 가량이다. 신용위험 평가의 주요 정량 기준인 최근 3년간 영업현금흐름 적자, 최근 3년간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을 적용해 산출한 것이다.
신한금융투자 김영환 연구원은 "종목 수는 많으나 대부분 소형주여서 시가총액 비중은 2.3%로 낮다"면서 "신용위험 세부 평가 대상 중 실제 워크아웃 대상이 지정됐던 비율은 최근 4년간 평균 6.3%에 불과해 증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구조조정으로 '업종의 불확실성'이 줄어 들어 오히려 주가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 이유로 전문가들은 부실기업 퇴출로 증시에 존재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가실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진척은 외국인의 마음을 살수 있는데다 실제 퇴출되는 기업의 경우 이미 주가가 상당히 하락한 상태여서 시장 전체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란 점을 들고 있다.
또 기업퇴출에 따른 불안감을 이미 시장에서 상당히 소화해 냈다는 점에서 지난 98년6월의 기업퇴출 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분석하고 있다.
하나금융투자 김용구 연구원은 "한국경제의 대표적 구조조정기라 할 수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는 훌륭한 반면교사이다"면서 "막연했던 구조조정이 구체화(30대 재벌 중 15개 파산 및 사세위축, 구조조정 대상 55개사 확정, 시중은행 구조조정 실시 등)되자 시장은 '브이(V)'자 반등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증권 박소연 연구원은 "치킨게임이 종료되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투자기회,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한계기업들의 도산으로 인해 나타나는 시장 내 자정작용과 마진(margin) 정상화가 현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고 밝혔다.
◆은행으로 위험 확산 가능성은 낮지만….
문제는 은행들이다. 시중은행에도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위험노출액(익스포저) 대부분이 국책은행에 편중돼 있으나 시중은행의 부실 위험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은 한진해운·현대상선·대우조선해양 등 한계 대기업에 대한 신용위험도를 아직 B등급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구조조정 기업을 '정상'으로 분류한 셈이다.
해당 기업들의 업황이 악화돼 구조조정에 나서면 채권은행들의 부실 채권이 늘어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고, 전체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은행 자산건전성에 큰 타격을 받는다. 실제로 기업대출 연체율은 시중은행 대부분에서 금융 위기 후 최대 폭으로 올랐다.
중소기업 대출도 무시할 수 없다. 대기업에 비해 대출 금액이 적지만 중소기업 대출이 점점 증가하는 상황에서 여신 심사의 고도화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내놓은 '2016년 중소기업 및 기업가 자금조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의 중소기업 대출보증 비율은 지난 2014년 기준 4.1%에 달했다. 이는 중소기업 대출보증제도가 있는 OECD 26개 회원국 중 그리스(9.2%), 일본(5.7%)에 이어 3위에 달하는 규모로, 회원국 평균(0.18%)에 비해 23배 높다.
시중은행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신용위험평가를 더욱 강화해 '기업 옥석가리기'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 대출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부각되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산업별 업황에 따른 부실 기업 위험성이 있다"며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평가와 리스크관리가 더욱 철저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용구 연구원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부실이 확인되거나, 금융권 신용기조가 보수화됨에 따라 중소기업의 추가 부실화가 야기된다면 좋지 않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금시장 경색가능성
퇴출기업 선정작업이 시작되면서 회사채 등 사채시장은 한층 더 얼어붙을 전망이다. 보험 은행 등 채권 수요기관들이 퇴출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채권을 떠안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회사채 인수기피→기업자금사정 악화→실적부진→신용등급하락→주가악하락'이란 악순환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또 퇴출기업의 회사채를 떠안고 있는 기관의 경우 또 다시 엄청난 부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운신의 폭이 위축될 수도 있다.
크레딧 시장 관계자들은 "기업들의 펀더멘탈(기초체력)이 약화되면서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채로 투자 수요가 몰리는 양극화 현상이 지속될 전망"이라며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