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명보험업계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의 35억원 '헐값' 매각이 도화선이 됐다. 문제는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에 이미 매물로 나왔거나 나올 예정인 ING생명·PCA생명·KDB생명 등 생명보험사들 역시 '제값'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국내 생보업계의 지급여력(RBC)비율, 건전성 지표의 악화가 예견된 탓이다.
RBC비율은 보험사가 예상치 못한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책임준비금 외에 추가로 자산을 쌓도록 한 제도이다. 대표적인 국내 보험사 건전성 지표다.
◆알리안츠생명 '헐값' 매각…"유럽식 기준 적용한 탓"
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알리안츠생명이 최근 낮은 매각가를 기록한 원인 중 하나로 RBC비율을 꼽는다. 지난달 1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지난해 4·4분기 기준 알리안츠생명의 RBC비율은 183.6%. 국내 보험업법상 보험사는 100% 이상의 RBC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알리안츠생명의 RBC비율을 이와 비교하면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다. 알리안츠생명과 비슷한 수준의 RBC비율을 가진 생보사도 동부생명(182.4%), 흥국생명(183.1%), KDB생명(178.5%) 등 다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그간 국내 보험업계는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회계기준을 적용, 자기자본 확충 등 건전성 부담을 덜 수 있었다"며 "다만 금융당국이 유럽식 건전성 지표 기준을 도입할 것을 예고하면서 국내 보험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금융당국은 보험산업의 부채시가평가와 RBC강화를 예고하고 나섰다. 이에 따르면 현재 국내 대부분의 생보사 RBC비율도 국내 기준 '양호'했던 지표가 '자본잠식' 수준에 놓일 전망이다. 알리안츠생명의 경우, 독일 본사의 알리안츠생명이 유럽식 건전성 지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함에 따라 '자본잠식' 수준의 건전성으로 낮은 매각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오는 2020년 국내 도입이 예정된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와 올해 유럽연합(EU)이 도입한 '솔벤시2(보험사 건전성 기준)'에 따르면 국내 생보사들의 RBC비율은 현저히 낮아진다"며 "실제 금융당국의 IFRS4 도입에 따라 건전성 기준을 조금씩 높이면서 국내 보험사 전체 RBC 비율은 점차 하락 추세다"고 지적했다.
◆예견된 하락세…"RBC비율 강화 방안 촉구해야"
실제 최근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기준 보험사 재무건전성 지표인 RBC비율은 생보사의 경우 278.3%로 전분기 297.1% 대비 18.8%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해당 비율은 계속 해서 낮아질 것으로 전망돼 더 큰 위험 요소로 꼽힌다.
보험연구원 관계자는 "당국이 보험부채 시가평가를 도입할 경우 국내 23개 생보사 중 5개사가 150% 미만으로 떨어지고, RBC강화와 병행할 경우에는 무려 11개사가 150%에 미달한다"고 설명했다. RBC비율 150%는 금융당국이 비공식적으로 요구하는 RBC비율 하한선이다.
업계는 서둘러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중이다. 각 사가 내부유보를 확대하고 유상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기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업계가 금융당국의 RBC비율 강화 제도를 이해하고 하루 빨리 상품구조의 자산운용 리스크관리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기정 신임 보험연구원장도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IFRS4 2단계 도입으로 보험사들의 자본이 감소하고 변동성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 연구원장은 "보험사 자본확충 방안을 마련하고 자산부채종합관리(ALM)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회계기준의 전면적 변화에도 보험사들의 관련 인프라가 부족, 국내 보험산업에 적합한 세부 적용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RBC비율 관련 제도도 바뀌면서 보험부채를 시가로 평가하면 가용자본이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시장환경을 고려한 도입 로드맵을 설정하고, 준비금 추가 적립 상황 등을 점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