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이 참여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가 이번주 2차 회의를 연다. 이번 회의에서 협의체는 최근 이주열 한은 총재가 자본확충방안으로 제시한 자본확충펀드 구성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다만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은 측에 국책은행 직접 출자 또는 대출을 바라는 정부와 '손실 최소화'를 원칙으로 삼는 한은 간 이견으로 자본확충책 합의점 마련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자본확충펀드 조성 실행의 핵심 쟁점은 정부의 지급보증 여부다. 펀드 조성을 위해 돈을 빌려주는 한은 입장에선 대출 회수를 위한 확실한 담보가 필요하다. 다만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기 위해선 여소야대인 현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정부로선 부담이 크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자본확충펀드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지난 2009년 정부와 한은이 조성했던 은행 자본확충펀드의 변형 모델이다. 은행 자본확충펀드는 한은이 산업은행에 대출을 해주면 산은이 이를 펀드에 출자, 펀드는 건전성이 나빠진 시중은행들의 자본을 늘려줌으로써 시중은행들이 기업과 서민 대출을 이어갈 수 있게 했다. 일종의 우회출자다.
이주열 총재가 제시하고 나선 자본확충펀드는 한은이 특정기관에 대출해 주면 이 기관이 펀드를 조성해 산은의 신종자본증권(코코본드) 등을 인수해 자기자본비율(BIS)을 높여 주는 방식이다. 산은이 스스로에게 대출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지난 2009년 산은이 맡았던 역할을 기업은행·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다른 기관이 맡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기까지는 한은과 정부의 이견이 없다. 문제는 한은의 자본확충펀드 대출금 회수 방안이다.
한은은 "대출금에 대한 담보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빚보증'을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앙은행으로서 손실 최소화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로선 이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급보증은 국가채무에 잡혀서 재정이 투입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라빚이 급증했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의 동의를 얻는 과정도 부담이다.
정부는 자본확충펀드가 구성되더라도 한은이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해 줄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은은 돈을 찍어 직접 출자를 하는 것은 발권력 남용 사례로 남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급보증 대신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로 산은 및 수출입은행에 정부 보유 공기업 주식을 현물로 출자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재정을 투입하려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하는데 구조조정만으로는 법이 정한 추경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고, 국회 동의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로선 구조조정 진행 상황에 따라 재정 투입 가능성을 아예 닫아 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추경을 편성하려면 구조조정 이후 대규모 경기침체나 실업이 와야 하는데 그것까지 확인하고 추경 편성에 들어가면 기업 구조조정을 하기엔 너무 늦다"며 "정부가 현물출자를 하고 한은이 직접 출자, 대출을 해주는 게 먼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 이후 정부가 내년도 예산 편성을 통해 재정 지원을 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