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성적표를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발의된 법안이 어느 회기보다 많을 정도로 국회의원들의 열의가 높았지만 대부분이 휴지조각 신세로 전락하면서 넘치는 입법 의욕이 무분별한 법안 발의만 불렀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민생·경제에 필요한 법안들 900여건이 본회의 문턱도 밟지 못한 채 사실상 폐기가 확정됐다.
대부분 법안들이 여야 정쟁으로 빛을 잃은 가운데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둔 18일 기적처럼 본회의행 막차를 타 통과가 유력시되는 법안들도 있다.
◆폐기 위기서 빛 본 '기사회생' 법안
죽었다 살아난 대표적인 법안은 전·월세 전환율 인하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되는 비율인 전월세 전환율은 현행 상한선이 6%지만 시장에선 이를 초과하는 거래가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다. 개정된 법안은 현행 '기준금리×α(알파)'에서 '기준금리+α'로 산정방식을 변경해 인하를 유도했다. 법안에 강제력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붙었지만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관련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보증금과 임대차 기간, 하자 보수에 관한 사항 등을 담은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 작성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일명 '신해철법'으로 불리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개정안도 가까스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사망이나 중증상해 피해를 입은 의료사고 당사자 및 유족이 피신청인(의사·병원)의 동의가 없어도 분쟁조정을 곧바로 개시할 수 있도록 한다. 현행법은 의사나 병원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법정 다툼을 하게 돼 시간과 비용 등의 문제로 피해 환자와 가족들의 불만이 높았다.
주민등록번호 유출 피해자가 주민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법사위를 지난터라 통과가 유력하다. 주민번호 변경 허용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행정자치부 주민번호변경위원회는 정보 유출 피해자에 대한 심사를 거쳐 변경을 허용한다.
◆쟁점법 희비…19대 가결률 43% '최악'
이밖에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과 영구미제 사건 해결을 위해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형사소송법), 역대 국회가 실패했던 공무원연금 개혁안도 19대 국회를 통과했다.
김영란법의 경우 적용대상이 언론과 사립학교로 확대돼 논란을 낳은 데다 헌재의 판단이 남아있어 실제 법 적용까지는 시일이 걸릴 전망이지만 사회부패 개선에 획을 그을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반면 새누리당이 중요성을 강조했던 노동개혁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과 야당이 중점을 뒀던 세월호특별법 개정안,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등은 이견을 좁히지 못해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오후 2시 기준) 본지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19대 국회(2012~2016년)의 법안 가결 통계(원안·수정·대안반영폐기 포함)를 확인한 결과, 전체 발의된 법안 총 1만7779건 중 통과된 법안은 7683건(43.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특히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1만5444건 중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5700건(36.9%)으로 낮은 가결률을 보였다. 처리되지 못한 나머지 9744건은 19대 국회에서 폐지된다. 법안 발의 건수가 의정 평가의 기준이 되면서 일부 문구만 바꾼 재탕·삼탕 법안 등이 쏟아진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