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 병. 림 : 작가, 카타르항공 객실 사무장, K-MOVE 중동 해외취업 멘토, :「아랍항공사 승무원 되기」,「서른 살 승무원」,「매혹의 카타르」저자
압둘라 부부의 외동딸은 열렬한 한류 팬이다. 부부를 좌석으로 안내하며 '한국인 사무장 누구'라고 인사를 드리자 압둘라씨가 대뜸 딸아이를 가리킨다. "우리 딸이 한국말도 잘 하고, 한국음악도 아주 좋아해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딸아이가 내 쪽을 돌아본다. "우리 숙녀 아가씨가 한국말을 그렇게 잘 하나요?" 반가운 마음에 내가 다가서자 소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답한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배고파, 울지 마! 괜찮아! 사랑해!" 중동꼬마의 입에서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국어가 너무 반갑고 귀여운 나머지 난 그만 까르르 웃어버린다. 압둘라 부부도 능숙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딸이 기특했는지 하하호호 연신 싱글벙글이다. 비행기가 이륙도 채 하지 않았는데, '한국'이란 화두 하나로 벌써부터 온 기내에 웃음꽃이 만발해 어쩐지 시작부터 느낌이 좋다.
이륙 후 다시 기내에 들어서자 소녀는 고사리 손을 뻗어 터치스크린을 요리조리 눌러보며 볼만한 영화검색에 한창이다. "우리 숙녀아가씨 좋아하는 한국영화도 있는데." 그러자 소녀의 두 눈이 총총 빛난다. 나는 터치스크린의 페이지를 몇 장 넘겨 여러 편의 한국영화 리스트를 펼쳐준다. 그 가운데 송강호, 유아인 주연의 영화 '사도'에서 나는 손을 멈춘다. "요즘 한국에서 제일 인기있는 배우란다. 맨 나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지섭' 도 나와. 무조건 봐야 돼!." 그러자 소녀는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소녀의 테이블을 펼쳐 테이블 세팅을 시작한다. 소녀는 빵과 버터 그리고 식기가 놓이는 내내 한 자락 미동도 없이 영화에 몰입한다. 에피타이저와 메인코스 그리고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이 나올 때 까지 스크린에 시선 고정이다. 흥미진진한 기승전결이며 비주얼에 연기력까지 탄탄한 한류스타들의 매력에 푹 빠진 모양이다.
모처럼 기내매거진에 우리 '비빔밥'이 소개된 것이 떠올라 해당 페이지를 접어 소녀 곁에 놓아준다. '비빔밥'을 발견한 소녀는 황급히 헤드셋을 거두며 "비빔밥!."하고 외친다. 잡지에 아는 음식이 나오자 또 신이 났다.
"한국 식당에서 먹어봤어요. 너무 맛있어요. 이번 겨울에 엄마아빠랑 한국 여행가서 실컷 먹을 거에요."
소녀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 하자 압둘라 부부도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흐뭇하게 바라본다. K-POP과 한국드라마에 열광하며 온통 한국 삼매경에 빠진 딸이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해주리란 얼굴이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은 내가 남산 한옥마을, 놀이동산, 쇼핑몰, 스키장 정보까지 빼곡하게 적어 내밀자 압둘라 부부는 엄지를 번쩍 치켜세운다.
갓 회사에 입사했던 9년여 전만 해도 '코리아'를 정확히 인지하는 승객들은 많지 않았다. 필리핀, 태국에 근접한 작은 나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고, 북한과 혼동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그 고된 시절이 있었기에 '한국인'이란 소개만으로도 단번에 호감을 사고, 누군가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모른다. 한국어 기내방송, 기내 영화음악 시스템 내 한국어 안내를 실시하고, 한국영화, 음악, 음식을 소개하면서 40,000피트 상공 작은 세상에서 오늘도 한국관광유치와 국가브랜드 높이기는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