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혁 과제 1호로 추진되던 한국거래소(KRX) 지주회사 전환작업이 사실상 물건너 갔다. 이에 따라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추진하던 금융개혁도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임 위원장은 "금융 개혁의 핵심은 혁신기업에 모험자본을 공급하고 투자자들에게 재산증식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본시장개혁에 있다"며 "거래소 지주회사 체제 개편, 초대형 투자은행 육성, 공모펀드 활성화, 상장 공모제도 개편, 회사채시장 활성화 등 5대 개혁과제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왔다.
시장에서는 임 위원장이 코스닥 시장 분리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해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코스닥시장은 어떤 형태로든 분리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19일 국회와 금융권에 따르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문턱을 결국 넘지 못했다.
개정안은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바꾸고 유가증권, 코스닥, 파생상품 등 기존 3개 시장을 자회사로 분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19대 국회 만료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이렇게 되면 20대 국회 원 구성 이후 관련 법안을 다시 발의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올해 안에 거래소를 지주회사와 자회사 체제로 개편하고 기업공개(IPO)까지 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이 사실상 물거품이 된 셈이다.
◆자본시장법 개정 무산
거래소는 해외 시장을 확보하고 다른 국가 거래소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지주회사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개정안 통과에 공을 들여왔다. 지난 2009년부터 6년간 공공기관으로 묶였던 거래소는 사업 영역이 국내로 한정돼 있으며, 거래 수수료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
반면 세계 주요 거래소들은 활발한 사업을 벌이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2000년 기업공개(IPO)를 한 홍콩거래소는 2012년 세계 최대 금속거래소인 런던금속거래소를 인수한 데 이어 2013년 중국과의 교차 거래를 시행해 글로벌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임 위원장의 자본시장 5대 개혁 추진안도 차질을 빚게 됐다.
그는 지난 달 간담회에서 "자본시장이 기업에게 양질의 자금을 공급하는 기업금융의 중심축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5대 개혁과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꼭 필요했다.
자본시장 안팎에서는 임 위원장이 차선책으로 코스닥시장 분리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코스피, 코스닥, 파생상품시장을 각각의 거래소로 분리하고 지주회사는 그룹 전체의 전략 경영에 집중시키겠다"는 임 위원장의 취지에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이미 기본적인 틀은 갖췄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3년 7월 '코스닥시장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 코스닥시장을 분리해 독자적인 의사결정기구로 하는 코스닥시장위원회를 그해 10월에 출범시켰다. 코스닥시장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해서였다. 거래소 이사회에서도 분리됐다.
이후 박상조 전 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장이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초대 회장에 선출됐고, 현재 연임이 확정된 김재준 본부장이 겸임하고 있다.
하지만 코스닥시장위원회는 출범 3년여 동안 제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질적으로 준정부기관인 거래소 밑에 코스닥시장본부가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기구인 코스닥시장위원회의 권한에 힘이 실리지 못한 셈이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구라는 평가다.
자본시장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물건너 가면서 KRX 구조 개편은 2∼3년 가량 지연될 수밖에 없다"면서 "차선책으로 코스닥 시장을 분리시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 지주사 무산…코스닥 분리 가능성
글로벌 환경에 둔감했던 KRX에 대한 구조개편 논의가 촉발된 것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을 다시 분리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현 시스템은 코스닥 시장을 통한 모험자본의 육성 차원에서 거래소가 2005년부터 통합해 운영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코스닥 시장 분리가 거래소 통합 성과로 이룩한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반론에 부딪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대신 코스닥 시장만이 아니라 자본시장 전체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KRX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 주장은 시장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대안으로 글로벌 자본시장의 흐름 처럼 지주회사 체제 전환과 소유구조 개편(IPO)으로 시장(자회사)간 경쟁과 혁신을 유도하자는 개편안이 만들어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임 위원장의 금융개혁의 첫 과제로 들고나온 거래소 지주회사 개편이 물건너 가면서 차선책을 찾을 가능성이 커졌다"면서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지주회사 전환에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기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20대 국회에 제언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에서 "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이 거래소의 유일한 경쟁력 강화 방안인 지, 대체거래소 설립 촉진을 통한 실질적 경쟁 체제 도입이 목적에 더 부합한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