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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계

웅진 윤석금·교원 장평순 회장 '같은듯 다른 인생 행보' 재계 이목 집중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메트로신문 김승호 기자]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사진)과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사진)의 같은 듯, 다른 인생 행보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회장은 1945년 생으로 '해방둥이'다. 우리 나이로는 올해 일흔 하나다. 장 회장은 윤 회장보다 여섯 살 아래다. 고향은 윤 회장이 충남 공주, 장 회장은 충남 당진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회장은 1980년에 자본금 7000만원으로 지금의 웅진씽크빅 전신인 웅진출판을 세웠다. 당시 직원수가 7명이었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윤 회장은 1971년 한국브리태니커에 입사해 1년 만에 전 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 백과사전을 가장 많이 판 인물이 됐다. 윤 회장은 입사 10년도 안돼 판매상무에 올랐다. '책 판매의 달인'이 출판사업에 뛰어든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다.

윤 회장이 만든 웅진출판에 장 회장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80년대 초반이다. 대학 졸업 후 고시공부를 하다 배추장사로 돈을 번 장 회장이 사업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출판사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장 회장은 입사 4개월만에 판매왕이 됐다. '청출어람'이다.

웅진출판에서 마케팅총괄까지 맡았던 장 회장은 자신의 회사를 차리고 싶어 사표를 던졌다. 배추판매, 책판매로 이미 잔뼈가 굵었던 그다.

그러고선 1985년 (주)교원을 창립했다. 당시 장 회장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직원은 3명이었다. 이듬해에는 지금의 '빨간펜'인 중앙완전학습도 창간했다.

윤 회장과 장 회장은 이렇게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 영역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3년 본격적으로 출판물을 개발하기 시작한 윤 회장은 학습지 '씽크빅', 전집 '한국의 자연탐험', '21세기 웅진학습백과사전' 등이 히트를 치며 웅진씽크빅을 국내 최대 종합출판사로 성장시켰다.

장 회장은 일본에서 '구몬' 라이센스를 가져와 1990년 구몬학습을 창간했고, 1년 뒤에는 중앙완전학습을 빨간펜으로 바꿨다. 90년대 중반에는 여행업에도 뛰어들었다.

장평순 교원그룹 회장



윤 회장은 정수기, 비데 등 생활가전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출판업을 통해 방문판매 시장의 미래 성장성을 본 그다.

지금은 남의 회사가 됐지만 웅진코웨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윤 회장은 환경가전분야에서 국내에 방문판매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인물이다. '코디(코웨이 레이디의 준말)'는 업계에서 대명사가 됐다.

이후 윤 회장은 웅진식품(1986년), 웅진에너지(2006년), 웅진폴리실리콘(2007년)을 잇따라 세우며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새한을 인수(2008년)해 웅진케미칼로 이름도 바꿨다.

장 회장도 2000년대 초반 웰스정수기, 와우비데 등을 선보이며 환경가전사업에 손을 뻗쳤다. 현재 교원의 또다른 핵심 사업부인 교원L&C의 탄생이다. 제주, 강원도 낙산 등에서 호텔업도 시작했다. 스위트호텔이 교원그룹의 호텔 브랜드다. 웅진그룹도 제주에 호텔을 갖고 있다. 오션스위츠다.

두 기업가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장 회장이 먼저였다. 80년대 후반 직원들의 파업, 영업조직의 대규모 이탈 등 '사람'으로부터였다. 다행히 장 회장에게 찾아온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장 회장에게 위기가 파도 수준이었다면 윤 회장은 쓰나미를 겪었다. 웅진그룹은 2010년 서른살 생일을 맞았다. 하지만 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2년 후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고, 다시 2년이 지난 2014년 초 회생절차가 마무리됐다. 윤 회장은 지난해 말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그룹이 크게 흔들리면서 오너로서 받았던 혐의가 다 풀린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 웅진그룹 품에 있었던 웅진코웨이와 웅진식품은 주인이 바뀌었다. 윤 회장은 코웨이 매각이 완료되기 직전인 2012년 말 코웨이 임직원들에게 '떠나보내 미안하다'는 작별인사가 담긴 편지를 보내면서 울음을 참아야 했다.

코웨이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장 회장은 인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최종 인수전에선 빠졌다. 이후 장 회장은 동양그룹 사태로 나왔던 동양매직 인수전에는 실제 뛰어들기도 했다.

한 때 15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순위 34위까지 올라갔던 웅진그룹은 그 사이 지주사였던 웅진홀딩스가 '웅진'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웅진폴리실리콘과 경기 부천에 있는 웅진플레이도시는 여전히 매각이 진행 중이다.

80년대 잠시 한솥밥을 먹으며 사업의 꿈을 키웠던 윤 회장과 장 회장의 행보는 30년이 훌쩍 지나면서 이렇게 엇갈렸다.

위기를 겪으면서 자신이 살던 서울 한남동 자택을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에게 판 윤 회장은 요즘 아파트에서 살며 매일 종로에 있는 웅진 본사를 오가며 재기를 위한 칼을 갈고 있다. 터키에서 시작한 정수기 사업과 국내에서 론칭한 화장품 사업이 대표적이다. 화장품은 '릴리에뜨'라는 토종브랜드와 미국서 가져온 '더말로지카'다.

그룹의 모태가 된 웅진씽크빅은 여전히 업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큰 아들로 웅진투투럽 대표를 맡으면서 정수기와 화장품을 총괄하는 형덕씨, 씽크빅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둘째 새봄씨가 윤 회장의 든든한 우군이자 아버지와 함께 또다시 꿈을 이룰 장본인들이다.

웅진코웨이를 MBK파트너스에 매각하면서 약속한 5년이 지나는 2018년 초부터 웅진은 터키에서 확대하고 있는 정수기 사업을 국내에서 다시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회장과 장 회장이 환경가전사업 분야에서 또다시 격돌하게 되는 셈이다.

웅진 관계자는 "터키는 우리나라와 문화가 비슷하고 한국에 대한 친근함이 있는데다 방문판매 시스템 등을 적용하기에 적당한 곳"이라면서 "향후 정수기 사업 추가 확대를 위한 테스트 시장으로선 제격이다"고 설명했다.

그룹이 위기를 맞기 직전까지 왕성한 대외활동을 했던 윤 회장과 달리 장 회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불린다. 그는 매일 을지로 본사에 출근한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임직원들과 간단히 점심을 한 뒤 인근 청계천을 산책하는 모습이 요즘 자주 목격된다. '무차입경영', '현금부자'인 장 회장의 재산은 1조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다만 그룹 및 계열사가 모두 상장을 하지 않아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쉽지 않다.

장 회장도 자식이 둘이다. 딸 선하씨, 아들 동하씨가 그들이다. 맏딸 선하씨는 남편과 함께 현재 교원그룹내 호텔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동하씨는 올해 교원구몬사업부 차장으로 승진했다.

재계 복수의 관계자는 "선후배 사이인 동시에 사업 동지였던 윤 회장과 장 회장은 모두 바둑 실력이 아마 5단으로 수준급이다. 예전엔 가끔 바둑을 함께 즐기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각자 다른 길을 가면서는 소원해졌고, 결국 지금은 바둑을 두기 위해 일부러 만나는 사이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살아온 인생이나 사업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은 윤 회장과 장 회장. 한 명은 재기를, 한 명은 또다른 기회를 엿보며 대한민국 기업사의 한 페이지를 써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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