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통영)=메트로신문 김승호 기자]올해 환갑인 김미진씨(가명·여). 그녀는 20년간 야심차게 운영하던 방송 프로덕션을 2014년에 정리했다. 인생을 바쳐 앞만보고 달려왔던 그녀는 폐업신고를 하고 나오던 그해 10월 어느날을 절대 잊을 수 없다. 그동안 자신의 프로덕션을 거쳐간 수많은 프로듀서, 작가 등 식솔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중 상당수는 지금 방송계에서 이름꽤나 날리는 인물이 됐다. 질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돈만 생기면 투자했던 손때묻은 방송장비들도 떠올랐다. 모두 품안에 있던 자식들이다.
그러고나서 수면제를 하나, 둘씩 사서 모았다.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사람들도, 세상도 모두 미웠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해선 안될 생각을 했다.
"죽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식들과 얼마전에 태어난 손주 얼굴이 떠올랐다. 도저히 그럴수 없었다. 어느날 북한산 둘레길을 걷다 길거리에 나팔꽃이 보였다. 꽃을 보며 주저앉아 한없이 울었다. 세상은 변한게 없는데 내가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를 하던 김씨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한때 350여명에 달하는 직원을 거느리며 방송계에서 잘나가던 프로덕션을 운영했던 그녀다.
돈을 벌때마다 방송 질을 높이기 위해 제작비에 투자했고, 직원들 보너스도 많이 줬다. 당시 '배고프게 일했던' 방송 환경속에서 직원들 밥도 많이 샀다. '엄마'입장에서 회사를 경영했다.
그러다 딴 살림을 차린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에 대한 복수심은 프로그램 경쟁심을 더욱 부추겼다. 방송에 돈을 더 투자했다. 종편이 등장하면서 제작비 인하라는 복병도 만났다. 믿었던 본부장이 배신했고, 스탭은 경쟁사에 아이디어를 넘겼다. 잘못될라니 안좋은 일들만 생겼다.
"K방송사에 방송을 납품하기 위해 막바지 스튜디오 녹화를 하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막 내린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냥 주저앉았다. 외주제작사들에 대한 방송사의 갑질은 상상 이상이다. 실력있는 PD들은 지금 다 중국으로 간다. 현재 방송 환경에선 갈수록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여자로서 사업하기 힘든 이 나라도 문제다."
20년간 방송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를 오가며 벚꽃 구경도 제대로 못해봤을 정도로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이 사업에만 몰두했다. 직원들 밀린 퇴직금 주고, 빚 청산하고 나니 자신에게 남은 돈은 없었다. 지친 몸뚱아리가 전부였다. 그녀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란 꽃말을 가진 찔레꽃차를 잔뜩 만들어놓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전 경남 통영 죽도에 있는 재기중소기업개발원으로 들어왔다. 배를 타고오면서도 그렇게 눈물이 나더란다. 죽도에 들어올 때는 실패자였던 미진씨. 하지만 이곳에서 나갈 땐 또다른 인생의 도전자가 돼 있을 자신이 있단다.
"지난달 22일부터 18기로 입소한 17명이 4주간의 재기교육을 받고 있다. 실패한 중소기업인이 재창업 성공률이 높다고 말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 실패했는지, 철저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해야 그나마 성공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재기개발원) 한상하 원장의 말이다.
혹독하기로 소문난 재기개발원의 교육은 철저하게 '비움'과 '채움'으로 이뤄져 있다.
일과만 봐도 그렇다. 매일 새벽 4시반께 기상해 5시부터 체조와 걷기, 명상, 100배 등을 진행한다. 특히 100배를 하면서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되내인다.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졌던 세상과 사람에 대한 적대감, 분노, 자신속에 쌓인 슬픔 등을 없애기 위해서다.
밥은 아침, 점심 두끼만 허용된다. 일주일에 하루는 온종일 금식한다. 배고픔 역시 비우는 과정이자 온전하게 자신만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3기 교육생이자 재기에 성공해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참텍 채흥태 대표는 "교육 초기엔 배고픈 것이 가장 참기 힘들더라.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저놈만 없었으면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을 텐데'하는 원망을 많이 했다. 트라우마도 심했다. 명상을 많이 하고 자신과의 대화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4주간의 훈련기간 내내 '묵언', '혼자걷기', '자기성찰' 시간도 철저하게 지켜야한다.
잠은 매일 텐트에서 잔다. 지난 4일 밤, 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이 부는 상황에서도 교육생들은 늦은 시간까지 어머니의 품과 같은 남쪽 바다가 보이는 죽도의 언덕위 텐트에서 자신만의 불빛을 밝히고 '나'에 집중했다.
한 원장은 "2기수마다 한 두명씩은 낙오자가 생긴다. 중소기업 경영자가 사업에 실패한 뒤 재창업하기까진 평균 47개월이 걸린다. 그만큼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다. 여기서도 참지못하고 낙오하면 재기가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수료생 360여 명 가운데 160명 이상이 재창업에 성공했다. 해가 거듭될 수록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늘어나고, 그러다보니 다양한 네트워크도 형성돼 긍정적 신호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6년째인 재기개발원에 재능기부 등을 통해 다녀간 강사진만도 100여명에 이른다. 실상사 도법스님, 넥센타이어 강병중 회장, 청와대 안종범 수석 등도 강사로 다녀갔다. 오는 16일엔 정호승 시인이 죽도를 찾을 예정이다.
특히 100여 명의 강사 중 상당수는 수 차례 죽도를 찾아 수강생들에게 '희망 전도사'가 되고 있다.
강의와 함께 주민들을 위해 의료 봉사를 하러 5일 죽도를 찾은 신통정형외과 심제성 원장은 "잘 나갈때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지만 망할 때는 거꾸로였다. 서른 중반에 종합병원장을 하며 80여명의 직원들을 거느리고, 각종 방송에 출연하니 자만심이 생겼다. 그래서 병원이 아닌 다른 사업에 손을 뻗쳤다. 결국 세 번을 망했다. 나의 욕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잃고 알았다"면서 "망한 뒤 나를 알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모든 것의 끝과 시작은 결국 '사람'과 '나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재기개발원을 거쳐간 수료생은 어느덧 360명을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재기개발원이 자리잡은 통영 죽도앞 바다도 '절망의 바다'에서 '희망의 바다'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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