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포화 사태의 국내 카드시장에서 올 초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는 카드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이에 더해 최근 글로벌 카드사인 비자(VISA)가 오는 10월부터 해외 이용 수수료 등 각종 수수료를 최대 2배까지 인상하겠다고 통보하며 국내 카드사의 위기의식을 고조시키고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부담이 큰 해외 이용 수수료가 인상될 경우 카드사의 수익성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이라며 "국내 8개 카드사들이 공동 명의로 비자에 항의 서한을 보냈지만, 비자의 입장이 워낙 완고해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카드시장에서 비자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60%를 넘기 때문에 비자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결국 손해를 보는 건 국내 카드사들"이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업계 당기순익 전년比 7.5%↓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8개 전업계 카드사의 지난해 순이익은 2조158억원으로 전년(2조1786억원) 대비 7.5% 줄었다. 우리카드와 비씨카드·신한카드의 경우 각각 전년 대비 124.4%(947억원)·56.8%(2008억원)·9.4%(6948억원) 증가했지만, 타사의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삼성카드가 53.6%(2868억원), 현대카드가 2.0%(2128억원) 감소했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가 반영된 지난 1·4분기 신한·KB국민·우리카드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2.95%·32.8% 줄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맹점에 의한 수수료 수익은 전체 카드사 수익의 약 40%를 차지하는데,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대부업법상 최고금리 인하 조치 등의 영향으로 카드사의 수익성이 둔화됐다"고 분석했다.
지난달 말 개원한 20대 국회에서 연체이자율 최고한도를 20%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자제한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도 카드업계로선 부담이다. 대부업법상 최고금리에 대한 추가 인하와 연 매출 3억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일반가맹점의 수수료율 역시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개정안 국회 통과를 염두하지 않고도 수익성 악화일로의 카드업계로선 올해 당기순익이 지난해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기존 카드업무 만으론 힘들어…'혁신' 거듭해야"
'첩첩산중'의 현실 앞에 카드업계는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삼성·하나·신한카드 등이 전직지원, 희망퇴직 등의 형태로 이미 인력을 줄였고, 올 들어선 롯데카드가 사상 첫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롯데카드는 만 45세 이상 또는 현 직급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5년 이상 재직한 직원을 대상으로 오는 17일까지 희망퇴직 접수를 받을 계획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시장상황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인력을 감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며 "예전과 달리 직원들의 니즈에 따른 자발적 지원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모든 산업이 현재 변화의 물결 속에 있듯 카드업계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서 이를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덕수 여신금융협회장 내정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카드와 캐피털업계 모두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진단하며 경쟁력 제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내정자는 "카드업계가 최근 들어 중금리 대출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하반기 출범하는 인터넷전문은행과 경쟁구도에 놓일 수 있다"며 "핀테크가 여신금융업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지만, 위험요인 역시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의 아이콘'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 역시 자신의 SNS를 통해 카드업에 대한 위기의식을 그대로 드러내며, 극복을 위한 회사의 '변신'을 선언했다. '디지털 현대카드'의 기치를 내걸고 온라인 검색 등 아예 새로운 사업에 도전, 구글과 같은 시장을 선도하는 회사로 거듭나겠단 뜻을 내비쳤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조금은 낯설지만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다"며 "업계에 내려앉은 안개를 뚫기 위해선 이제 '남다른' 사업이 아닌 '아예 다른 회사'가 되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