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신문 연미란 기자]명분도, 민심도 모두 잃었다. 상처뿐인 대안이었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국론분열과 지역갈등의 상처를 남긴 채 5년 3개월여 만에 또 다시 무산됐다. 2011년 4월 이명박 정부가 영남 분열과 정치권 갈등에 부담을 느껴 전면 백지화를 선언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본격 검토에 착수했던 대규모 국책사업이 20년 지역 갈등 끝에 '전면 무산'으로 결론난 셈이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은 신공항 백지화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불복종 운동 등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어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청와대를 향한 비판도 거셀 전망이다.
◆정부·ADPi "김해공단 확장이 최적의 대안"
국토교통부와 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21일 오후 3시 정부세종청사 2층 브리핑실에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 최종보고회'를 열고 현재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김해공항 확장안'은 기존 공항을 보강하는 차원을 넘어 활주로와 터미널 등 공항시설을 대폭 신설하고 연계 교통망을 확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신공항 유치 경쟁 과정에서 일부 갈등과 논란이 있었지만 5개 지자체가 합의한 방식에 따라 입지평가 결과가 나왔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평가 결과를 수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당시 '경제성 미흡과 환경훼손'을 이유로 신공항 건설계획이 백지화된 지 5년 만에 똑같은 일을 겪자 부산과 대구·경북지역 관가·정계, 지역민들은 정부가 그동안의 약속과 신뢰를 저버렸다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수용 못해…영남지역 무시한 처사"
가덕신공항 건설을 주장하며 시장직까지 걸었던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번 결정으로 정부는 신공항 건설 의지가 없다는 점이 명백해졌다"며 "360만 부산시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결정은 25년간 시민 염원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수도권의 편협한 논리를 따른 결정"이라며 "김해공항은 확장한다고 해도 24시간 운영은 여전히 불가능하며, 안전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부산지역 시민단체들도 백지화에 반발하며 정부의 특단을 촉구했다. 김지 부산상의 발전위원장, 서세욱 부산을가꾸는모임 대표 등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정책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김해공항 확장안 제시는 정부의 미래에 대한 항공정책 실기의 산물"이라면서 "많은 지역의 갈등을 봉합하는 임시적인 미봉책"이라고 주장했다.
경남 밀양 유치에 자신감을 보였던 대구시도 허탈하긴 마찬가지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신공항 무산 직후 "충격적이고 황당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10년 전으로 되돌린 어처구니없는 결정"이라고 비판한 뒤 "신공항 추진 이유는 영남권의 항공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낸 용역기관의 결과를 정부가 그대로 발표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며, 실망스럽다. 영남권 시·도민들은 분노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민간단체에서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지역 김영춘·김해영·박재호·전재수·최인호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 방안을 제시한 데 대해 '수용 불가'라고 반발하며 당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하면서 신공항 건설 입지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종지부를 찍게 됐지만 정치권이 표심에 눈이 멀어 지역 갈등만 부추겼다는 비판에선 자유롭지 못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