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황제' 샌디 웨일(전 씨티그룹회장). 그의 장밋빛 인생은 갑작스레 막을 내린다. 씨티그룹 산하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애널리스트가 임의로 AT&T 투자등급을 올렸다는 의혹으로 검찰의 조사가 결정적이었다. 2002년 당시 시장에서는 웨일 회장이 2000년 초 존 리드(씨티코프 회장)와 황제 자리를 다투던 시절에 이사회 멤버였던 마이클 암스트롱 AT&T 회장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 이었다는 루머가 있었다. 결국 문제의 애널리스트가 애인과 주고받은 전자 서신에 담긴 '웨일이 시켰다'는 글귀에 웨일은 궁지에 몰린다. 씨티그룹 명성은 땅에 떨어지고 웨일은 자리에서 물러난다. 웨일은 후에 "씨티그룹은 망하지 않을 구조였지만, 경영자들이 힘들게 만들었다"며 책임을 자신과 경영진의 탓으로 돌렸다.
한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도 자신의 행보에는 책임을 진다. 하물며 국책은행의 수장을 지낸 이들이 책임 회피와 돌출 행보로 눈총을 사고 있다.
바로 홍기택·민유성 전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수장들이다. 산업은행장을 지낸 홍기택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는 대우조선해양 부실 책임론에 휩싸이면서 돌연 휴직한 사실이 알려져 나라 망신을 샀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민유성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현 나무코프 회장)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도와 형제간 싸움의 두뇌 역할을 하고 있다.
◆홍기택 AIIB휴직, 망신살 뻗친 대한민국
나랏돈을 운영하는 국책은행. 산업은행이다. 지난 54년 만들어진 산업은행은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국제금융, 기업구조조정 등을 도맡아 했던 국책은행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민영화됐다가 지난해 다시 공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IMF외환위기를 전후로 대우그룹 등 구조조정을 주도하면서 한국 경제의 든든한 비팀목 역할을 했다. 그 새 자산도 309조(2015년 기준)으로 불었다.
막중한 역할을 하는 만큼 수장(CEO)도 굵직한 인물들로 채워졌다. 2009년 산은법 개정안이 바뀌기 전까지 '총재'를 명칭을 쓴 것도 책임과 무게감을 반영한 것이다. 산업은행 환 관계자는 "외국에도 중앙은행이나 개발금융기관의 수장은 보통 가버너(governer)라고 표현하는데 법 제정 당시 이를 번역해 총재라는 표현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어찌 된 일인지 산업은행의 명성이 땅에 떨어졌다. 일각에서는 '무용론'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그 뒤에는 홍기택·민유성 두 수장의 꼴불견 행보도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홍 전 산업은행 회장은 폭탄 발언과 말 바꾸기로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지난 8일 베이징에서 한 국내 매체와 인터뷰를 갖고 "대우조선 지원은 (작년 서별관 회의에서) 정부가 결정한 행위로, 산업은행은 들러리만 섰다"고 폭로성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결정했을 뿐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뜻이었다.
발언이 국내에 파문을 몰고 오자 홍 부총재는 "보도가 사실과 다르다"며 수습에 나섰다.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홍 전 회장의 발언 이 후 야당의 화살은 바로 청와대로 향했고, 후폭풍은 거셌다. 청와대는 물론 임종룡 금융위원장까지 불끄기에 나서는 진풍이 벌어졌다.
지난 28일에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홍기택 부총재가 돌연 휴직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홍기택 부총재는 AIIB 이사회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홍기택 부총재는 지난 2월 AIIB의 리스크 담당 부총재(CRO·Chief Risk Officer)로 임명되면서 산업은행을 떠난 지 불과 4개월여 만이다. 그가 휴직하게 된 이유와 자세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간 우리 정부는 AIIB의 5개 부총재 자리 중 하나를 얻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중국은 프랑스의 거센 반발에도 리스크 담당 부총재 자리를 한국 몫으로 돌렸다. 훗날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이 수주를 다툴 때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AIIB가 후임자를 새로 뽑기로 하면 한국에서 다시 맡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AIIB에 37억달러(약 4조3200억원)의 분담금을 내고, 중국·인도·러시아·독일에 이어 다섯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부총재 자리가 우리 몫으로 늘 배정된 것은 아니다.
◆롯데가 형제간 싸움에서 민유성의 노림수는
동생 신동빈 그룹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신동주 회장.
그의 뒤에서 형제간 싸움을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민유성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현 나무코프 회장)이 있다. 그는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산업은행 총재와 산은금융지주 회장직을 지냈다.
롯데 경영권 분쟁 초기부터 신동주 회장의 조력자를 자처한 그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70년 동안 키운 회사가 잘못해서 롯데홀딩스 츠쿠다 다카유키 사장이나 고바야시 마사모토 최고재무책임자에게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배경을 밝힌 바 있다.
민 회장은 동창 선후배들과 분쟁을 이끌고 있다. 김수창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 조문현 법무법인 두우 대표변호사, 정혜원 SDJ코퍼레이션 상무 등이 핵심 맴버로 꼽힌다. 정 상무는 한국어가 서툰 신 회장의 '입'으로 통한다.
롯데그룹 안팎에서는 민 회장이 신 전 부회장의 '브레인'을 자처하고 나선데는 다른 노림수가 있다고 본다. 실제 민 회장과 신동주 회장은 친분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장에서는 민 회장이 롯데가 경영권 분쟁을 발판 삼아 자신의 입지를 부각시키거나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틀어진 이후를 생각하고 움직였을 것이란 소문이 있다.
롯데가 경영권 분쟁에서 앞으로 그가 더 보여줄 두뇌 싸움이 관심이다.
신 전 부회장은 최근 대변인 격인 민유성 SDJ코퍼레이션 고문의 입을 통해 "내 인생을 걸고 경영권을 탈환하겠다. 동생(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승리할 때까지 계속 주총을 열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