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년여 만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연 1.50%→1.25%)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부와 미국 FOMC의 금리 인상, 하반기 기업 구조조정 등 대내외 경기 불안요소로 인해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당시 기자간담회를 통해 "기준금리 인하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선제적인 조치"임을 밝혔다.
다만 유례 없는 초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국내 가계부채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한은의 금리인하 단행은 가계부채 폭증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불러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상환능력이 양호한 소득 4~5분위 가구가 가계부채의 70%를 보유하고 있고 금융자산이 부채대비 2배 이상 상회한다는 점에서 아직 국가경제 건전성에는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그러나 경기회복이 더딘 가운데 부채 증가속도가 소득 증가속도를 웃도는 것은 소비위축 등 거시경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가계부채 1223조시대…주택담보대출 비중 커
최근 한은이 발표한 '2016년 1분기 중 가계신용 잔액(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우리 가계부채 총액은 1223조6706억원이다. 절대적인 금액도 문제지만 증가 속도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1·4분기가계부채는 전 분기 대비 무려 20조6000억원(1.7%) 증가했다. 지난 2013년 2·4분기 이후 11분기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이다. 한은이 가계신용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지난 2002년 4·4분기 이후 최대 규모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근래 5년 들어 급증했다. 지난 2011년까지만 해도 가계부채 총액은 1000억원에 못 미쳤다. 당시 916조원이던 가계부채는 지난 2013년 1019조원으로 1000조원을 처음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1200조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은 관계자는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전 세계적으로 볼 때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3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최근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8.4%로 전년 대비 4%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1962년만 해도 1.9%에 불과했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0년대 들어 50%를 넘더니 2002년 60%대로 진입, 가파르게 치솟으며 홍콩을 앞질러 13년째 신흥국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미국(79.2%)이나 일본(65.9%), EU(59.3%)보다 높은 수준이다.
한은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는 주택을 기반으로 하는 대출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며 "특히 저금리와 주거난이 상호 작용을 일으키며 가계부채 증가에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금리 인상, 주택가격 하락보다 위험해"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우리나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30대만 101조원으로 전 분기 대비 10조4000억원(11.5%) 증가했다. 30대가 받은 주담대 잔액은 지난 한 해 15조9000억원 증가했는데, 올 들어 3개월 만에 증가액이 10조원을 넘어섰다.
저금리를 틈타 너도 나도 신규 분양시장을 통해 내 집 마련에 나서면서 집단대출 또한 급증세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주담대 증가액(19조원)의 52.6%인 10조원이 집단대출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집단대출은 지난 2월 여신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 시행 규제 대상에서 빠졌던 대출 항목"이라며 "올 하반기부턴 집단대출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에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금리 정책 시행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 위험성은 그간 수차례 제기됐다. 다만 전 세계적인 저금리 정책으로 이에 따른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니다. 아직까지 시장에서 추가 금리 인하를 기대할 정도로 금리 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상황이다.
금감원이 최근 발행한 '가계부채의 부실 위험성 예측 및 평가'에 따르면 미국 금리인상이 본격화돼 국내 대출금리가 3%포인트 오를 경우 국내 10가구 중 1가구는 가계부채 위험가구로 전락한다. 반면 주택 가격은 10% 정도 하락해도 위험가구로 전락하는 가구 비율은 0.21%포인트 정도뿐이 상승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1200조원을 넘는 가계부채 뇌관은 집값이 떨어질 때보다 이자율이 오를 때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자율의 추가 상승이 주택가격의 하락보다 가계부채 위험도를 더 높이는 것으로 예측된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