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자산가인 박 모씨. 그는 물려받은 자산과 금융소득으로 생활하는 '위험 중립형' 투자자로 분류된다. 주가연계증권(ELS) 상품만 생각하면 잠이 안온다. 기초자산 종목 주가가 기준가보다 50% 넘게 하락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는 상담사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가 적잖은 손해를 보고 손절매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1억원을 예치하면 은행에서 계산해준 세후 이자가 연간 150여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기회비용과 시간 가치를 따지면 손해란 생각이 들지만, 원금을 날리지는 안는다"며 은행에 예치했다고 전했다.
50대인 김 모씨는 20억원대의 운용자산(지난해 말 기준)을 보유한 큰 손이다. 그는 물려받은 자산과 금융소득으로 생활하는 '위험 중립형' 투자자로 분류된다. 랩어카운트에 투자했다가 쓴맛을 본 그는 최근 코스피가 다시 오르자 고민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주식을 살까 했지만, 브렉시트 등 불안 요인이 너무 많아서다. 이에 김씨가 선택한 대안은 금전신탁이었다.
자산관리 시장이 극과 극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질금리 제로 또는 마이너스 시대가 도래하자 은행권에서 더 이상 금융 이자 수익은 기대하기 힘든 투자자들이 '금리 노마드(유목민)족'으로 나섰다. 다른 한쪽에서는 원금이라도 지키겠다는 보수적 성향의 투자자들도 늘었다.
◆단기 특판상품 찾는 당신은 금리 노마드?
1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주가연계신탁 수탁액은 32조2491억원으로 월간 기준 통계 집계 후 최고치다.
주가연계신탁(ELT)은 부자들도 좋아하는 상품이다. KEB하나은행과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2015 코리안 웰스 리포트(Korean Wealth Report)'에 따르면 가장 투자 의향이 높은 금융상품으로는 은행에서 판매하는 ELT와 증권회사에서 판매하는 ELS를 합친 응답이 38%로 가장 높았다. MMDA나 CMA 등 단기 고금리성 상품(11%), 주식 직접투자와 주식형 펀드(각각 9%) 투자 보다 높다. 이 리포트는 KEB하나은행의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프라이빗뱅킹(PB)고객 10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내놓은 일종의 '부자 보고서'다.
증권사의 정기예금형 신탁도 인기가 높다. 5월 현재 수탁액은 71조2400억원으로 역시 통계 집계후 최고치다. 이 상품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위안화 정기예금을 편입하는 것으로 현재 수익률이 연 2∼3% 수준에 이른다.
국내 한 은행의 PB는 "금리가 연 4~5%를 웃돌던 시절과 연 1%대로 낮아진 지금 0.1%포인트에 대한 체감도는 크다"며 "부자들이 이자 쇼핑에 나서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전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정책에 따라 향후 추가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점, 영국의 브렉시트 영향이 단기 상품인 특정금전신탁의 선호도를 더 높여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시장에서는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급증했다는 게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특정금전신탁은 예금자 원금 보호를 하지 않는 상품이어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 2013년 동양그룹 사태 때는 동양증권이 그룹 계열사의 회사채 등을 판매하는 데 특정금전신탁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위험도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불완전판매로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웠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급락의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국내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액이 반토막 났지만 사모 ELS비중은 더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반기 사모 ELS비중은 37%로 지난해 하반기 보다 3%포인트 늘었다.
◆나는 위험 회피형?
주가연계증권(ELS)의 올 상반기 발행액은 작년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쳤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1~6월 주가 연계 파생결합사채(ELB)를 포함한 ELS 발행액은 작년 동기 대비 56.6% 감소한 20조4299억원을 기록했다.
투자 성향도 보수적이었다. 원금이 전액 보장되는 ELS 발행이 지난해 상반기 14.5%에서 33%로 두 배 이상 늘며 수익률이 조금 낮더라도 안정적인 상품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졌다.
유안타증권 이중호 연구원은 "다수의 투자자가 추가 녹인 발생여부를 우려하며 원금보장형 투자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양한 이벤트와 특정 기초자산에 쏠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격언은 꼭 지켜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시중 여유자금도 안전하면서도 만기가 짧은 금융상품에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만기 1년 미만 정기예금 잔액(말잔 기준)은 4월 말 현재 199조 4830억 원으로 3월보다 0.4% 증가했다. 이 금액은 역대 최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가과 비교해 1년 새 21.3% 늘었다.
만기 1년 미만의 정기예금 잔액은 2009년 11월 100조 원을 넘어선 이후 2010년 10월 150조 원, 작년 3월 160조 원, 6월 170조 원, 8월 180조 원, 10월 190조 원을 돌파했다.
반면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1년 이상 2년 미만 정기예금 잔액은 4월 말 현재 342조 7050억 원으로 3월보다 0.1%, 작년 같은 달보다 5.9% 감소했다.